[전문의 칼럼] 아이의 발열, 병이 아닌 ‘신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2.09 13:22
우리아이들병원 병원장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백정현

▲백정현 우리아이들병원 병원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영유아를 키우는 보호자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까? 아이가 밤중에 갑자기 아플 때 느끼는 막막함과 걱정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발열은 아이들이 겪는 가장 흔한 건강문제이자, 소아과 외래와 응급실을 찾는 빈번한 원인이다.


그러나 발열 그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부모들이 느끼는 '발열 공포(fever phobia)'다. 발열 공포는 아이의 발열을 정상적 면역반응이 아닌 중대한 질환 자체로 느끼는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발열 공포는 아이가 열이 날 때 정량 이상의 해열제를 준다거나 과도한 의료 기관을 이용하는 경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아이들병원은 24시간 소아진료를 시작한 후 4개월(2025년 4월 1일~2025년 7월 31일)간 자정부터 아침 9시까지 심야와 이른 아침 시간대에 아이들이 어떤 증상으로 병원에 내원하는지 분석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 시간대 외래 환자의 91%가 발열, 호흡기, 위장관 증상을 보였고, 발열로 내원한 경우가 전체의 56%를 차지했다. 전체 환자 중 77%는 경구약 처방으로 끝나지 않고 수액치료, 입원 등 적극적 처치를 필요로 했다. 즉 부모들이 밤새 아이의 열을 지켜보다가 결국 병원을 찾는 과정에는 발열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고, 즉각적 처치가 필요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발열은 왜 생기는 걸까? 우리 몸에서 발열이 일어나는 과정은 생각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발열은 외부 병원체가 침입했을 때 면역체계가 이를 제거하기 위해 시상하부의 체온 설정점을 높이면서 나타나는 생리적 반응이다. 아이의 체온이 40도에 이르면 많은 부모가 '너무 높은 것 아닌가'라며 불안해하지만, 대부분의 발열은 스스로 조절 범위 내에서 움직이며 회복된다. 시상하부의 설정점에 의해 조절되는 발열은 42도를 넘지 않기 때문에 뇌 손상 등을 우려할 필요는 거의 없다. 물론 42도 이상으로 체온이 상승한다면 이는 열사병과 같은 다른 질환을 시사하며, 이때는 즉각적인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니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 아이들 발열은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에서 비롯된다. 병원체가 체내로 침입하면 면역반응이 활성화되고, 이를 돕기 위해 체온이 상승한다. 즉 발열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병원체와 싸우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가 발열 자체를 위험한 질환으로 오해한다. 특히 발열이 곧 경련, 뇌 손상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는 전문가들이 반복적으로 설명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발열 공포가 불필요한 의료 이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바이러스성 발열은 보통 3~5일 지속되는데, 부모들은 해열제를 복용시킨 뒤 열이 바로 떨어지지 않으면 병이 악화되는 것으로 오해한다. 이로 인해 해열제를 과다 투여하거나 교차 복용을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이에게 열이 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의사의 진찰을 통해 감염 여부와 증상의 경중을 확인하고, 아이가 탈수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다수 발열은 적절히 관리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 문제는 발열 그 자체보다, 발열을 바라보는 부모의 인식과 불안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 발열 공포를 낮추는 교육, 즉 아이의 발열은 자연스러운 면역 과정임을 이해하고, 해열제 사용의 기준과 가정 내 대처법, 병원에 와야 할 상황과 지켜봐도 되는 상황을 구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부모가 불안이 해소되면 아이 역시 덜 힘들고 안정된 환경에서 회복할 수 있다.


*글=백정현 우리아이들병원 병원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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