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몸 밖에 나온 채 출생… 90% 이상 출생 전·직후 사망
흉강 안에 심장 넣은 뒤 배양 피부 덮는 고난도 재건술 성공
6개 진료과 다학제 협진, 생존을 넘어서는 '의료의 종합예술'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최초로 심장이 몸 밖에 나온 채 태어난 심장이소증 신생아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이달 12일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세훈 교수(왼쪽), 소아청소년심장과 백재숙 교수((오른쪽) 가 심장이소증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는 환아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난치병 정복의 중심, 서울아산병원이 또 해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죽음의 문턱에 선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지난 4월 10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분만장. 엄마 뱃속에서 38주 만에 태어난 아기의 심장이 몸 밖으로 완전히 노출된 채 뛰고 있었다. 심장을 보호해야 할 흉골이 없고 가슴과 복부의 피부조직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흉부가 열려 있는 상태였다. 아기가 울면서 힘을 줄 때마다 심장과 폐 일부가 몸 밖으로 밀려나왔고, 폐 기능이 극도로 저하돼 자가 호흡으로는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그 여아(8개월)는 심장이소증(ectopia cordis)을 안고 태어났다. 심장이 흉곽 안에 위치하지 않고 몸 바깥으로 나와 있는 원인 불명의 초희귀 선천성 질환이다. 100만 명당 5∼8명에게 발생하며, 환자의 90% 이상은 출생 전 사망하거나 태어나더라도 72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그런데 이 아기의 작은 심장은 몸 밖에서도 힘차게 박동하며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소아청소년심장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성형외과, 소아심장외과, 산부인과, 융합의학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다학제 협진팀을 만들었다. 처음 경험하는 환자지만 베테랑 의료진들의 눈에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심장이소증을 앓는 신생아의 심장을 흉강 안으로 넣고 가슴 부위를 배양 피부로 덮는 고난도 재건 수술에 성공했다.
부모는 아이를 얻기 전 3년간 14차례의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2024년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임신 12주 만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2024년 11월 1차 태아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 아기의 심장이 몸 밖에 나와 있는 심장이소증을 진단받은 것이다.
당시 처음 진료를 시행한 병원에서는 생존율이 매우 희박하다며 절망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살아서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더라도 3일을 넘기기 힘드니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라며 마지막 희망을 안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먼저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의 산부인과 이미영 교수는 매 진료마다 긴 시간 동안 꼼꼼하게 정밀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며 심장의 구조와 태아의 건강 상태 등을 지속적으로 살폈다. 주치의인 소아청소년심장과 백재숙 교수와 소아심장외과 최은석 교수는 치료 계획에 참고할 수 있는 모든 연구 문헌을 찾아보았고 “태아의 심장 구조는 정상이고, 저희가 끝까지 함께 할 테니 포기하지 마세요" 라며 끊임없이 용기를 건넸다.
“살릴 수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신념과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태아는 뱃속에서 38주의 시간을 버텨냈다. 그리고 금년 4월 10일, 드디어 세상과 만났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이었다. 흉골 전체가 없고 흉부·복부 피부와 연부조직이 결손되어 심장 전체가 몸 밖에서 뛰고 있는 상태였다. 신생아의 심장이 체외에 완전 노출된 경우는 국내에서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로, 초음파에서 확인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소아청소년심장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성형외과, 소아심장외과, 산부인과, 융합의학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수차례 회의하며 생존을 위한 치료 방향을 논의했고, 흉강 내 공간을 확보해 심장을 넣은 뒤 그 위를 배양시킨 피부로 덮어 흉부를 재건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몸 밖에 위치한 심장을 외상, 감염, 건조로부터 보호하고 호흡과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의료진은 즉시 인공호흡기 치료, 멸균 드레싱 등을 시행했고 생후 다음날인 4월 11일 성형외과 김은기 교수는 개방된 흉부와 노출된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인공피부를 덮는 수술을 시행했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세훈 교수는 5월 7일, 14일, 22일 총 세 차례에 걸쳐 심장을 흉강 내에 넣는 수술을 시행했다. 혈압을 유지하면서 주변 장기를 손상시키지 않고 심장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최 교수는 간을 아래로 내리면서 조금씩 심장을 안으로 밀어 넣었고 3번째 수술 만에 심장 전체가 흉강 안쪽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어 6월 10일에는 김은기 교수가 아기의 피부를 소량 떼어 배양한 자기유래 배양피부를 흉부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생후 두 달 만에 심장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흉부는 뼈와 같은 단단한 구조물 없이 피부로만 덮여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에 취약한 상태였다. 이에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는 3D 프린팅을 이용해 흉벽이 벌어지지 않게 양측 흉곽을 모아주는 맞춤형 흉부 보호대를 제작했다. 또한, 재활의학과 의료진은 이 환아가 또래 아이들처럼 자랄 수 있도록 재활 치료를 진행했다.
이후 아기는 건강을 점차 회복해 일반병동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생후 100일쯤에는 엄마 아빠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보여주었다. 몸 밖에서 뛰던 작은 심장이 이제는 몸 안에서, 제자리에서 힘차게 뛰고 있다. 최근 퇴원해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다니면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향후 최종 교정을 위해 전흉벽을 단단한 인공 구조물로 재건하고 그 주변을 아이의 근피부조직으로 덮어야하기 때문에 3세 이상까지 성장을 기다린 후에 추가 수술이 진행될 예정이다.
백재숙 소아청소년심장과 교수는 “진료의 매 순간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기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들이 의료진에게 분명한 희망이 되었고, 그 희망이 다음 치료 단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면서 “한 걸음이라도 계속 내딛으려는 마음이 새로운 가능성과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희귀 질환을 가진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초희귀 선천성 질환인 심장이소증 아기를 살리는 것은 의사 한 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합니다.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임상 경험을 갖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관점에서 본 평가와 치료 방향을 공유했고, 이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협진을 진행한 덕분에 살릴 수 있었습니다." (최세훈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