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고뇌와 환자를 이해하며 배양된 인간에 대한 온기 느껴져
의사수필동인 박달회가 신간 수필집 '언어의 정원'(도서출판 지누)을 출간했다. 매년 의사 문인들의 삶과 성찰을 글로 담아 독자들과 소통해 온 박달회가, 52번째 시리즈를 맞아 한층 더 깊고 진한 사유의 결을 선보였다.
박문일 박달회 회장은 서문에서 '글만 써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라는 후배의 일침을 소개하면서도, '글이 세상을 직접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생각을 일깨우는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고백은 박달회 수필집이 단순한 일상 기록을 넘어, 동시대에 맞닿은 질문들을 다루고 그 답을 문학이라는 토대 위에 새기는 의미 있는 저작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의사로서 겪는 직업적 고뇌와 환자를 이해하며 배양된 인간에 대한 온기가 깊은 문장으로 담겨 있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마주한 의학적 기적과 불운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곽미영), 환자에게 마취성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이 아픔의 표현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행위가 아닐까 묻는다(양은주).
한 사람의 의료인이 탄생하기 위해 스승과 제자가 사랑과 끈기로 노력해야 함을 고언(苦言)하고(정준기), 무위(無爲)의 지혜와 실천의 용기에서 의사의 존재 이유를 성찰하며(박문일), 큰 수술을 앞두고 악몽을 꾸며 심적으로 나약해진 자신을 고백하기도 한다(박종훈).
거미줄 사진을 보며 의원간 네트워크를 떠올리고 국내 의료계를 걱정하는 의사(홍지헌),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는 환자를 보며 사회를 염려하는 의사도 있다(죄종욱). 보고 느낀 것을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삶의 위안을 받을 수 있으며(홍순기), 고된 트레킹을 통해 성취와 노력에는 후유증이 따르고 간절함에도 나이가 있음을 깨닫는다(김숙희).
오래 근무한 제주도 병원을 떠나는 소회와(양훈식), 공군 시절 받은 비행훈련을 회상하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기록한다(한광수). AI시대에도 최고의 글쓰기 선생님은 인간의 삶 그 자체임을 분명히 하고(홍영준), 국내 화폐에도 위대한 의사의 얼굴이 실렸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조재범).
건강검진을 두려워했던 의사가 검진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채종일).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는 글에서는(유형준) 인간적 면모가 엿보인다. 급변하는 시대에도 결국 '영원한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이상구) 속에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