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 지목 ‘로컬라이저’ 설치 부당성 확인
“안전 구역 내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재설치”…무사안일 규정 해석 경종
▲소방대원들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탈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 12월 29일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2216편 참사가 규정을 어긴 '콘크리트 둔덕'에 의한 인재(人災)였음이 정부 기관의 조사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무안공항의 항행 안전 시설이 항공기 충격 시 파손되기 쉬운 재질로 설치돼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국토교통부에 시정 권고를 내렸다.
22일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동체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한 여객기는 활주로 종단 안전 구역(RESA, Runway End Safety Area) 끝단 인근에 설치된 '방위각 제공 시설(Localizer, 로컬라이저)'과 충돌하며 폭발했다는 의결서를 발행했다.
해당 시설은 항공기가 활주로 중심선에 맞춰 착륙하도록 돕는 필수 항행 안전 시설이다.
문제는 이 시설의 '기초'였다. 관련 규정인 '공항 시설 설치 기준'과 '공항 안전 운영 기준'에 따르면 항공기 충돌 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당 시설은 부러지거나 휘어지기 쉬운 '이절성(Frangible)' 재질과 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무안공항의 시설은 높이 약 2m에 달하는 견고한 콘크리트 격벽과 상판을 포함한 둔덕 위에 설치돼 있었다.
권익위는 “해당 시설은 충격 에너지를 흡수하는 완충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충돌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고정식 강성 구조물이었다"며 이는 항공기 사고 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안전 구역 설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정 밖이라던 국토부, 명백한 위반이라는 권익위
▲국민권익위원회 GI
그간 피신청인인 국토교통부는 해당 시설이 활주로 RESA 밖에 설치됐으므로 이절성 재질 설치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항변해 왔다. 하지만 권익위는 △강제적 연장 규정 △국제 기준 부합 △공간적 적용 요건을 언급하며 다른 판단을 내렸다.
정밀 접근 활주로의 경우 방위각 제공 시설이 설치되는 지점까지 안전 구역을 연장해야 한다는 강행 규정이 존재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에 따르면 정밀 접근 활주로의 방위각 제공 시설은 '첫 번째 장애물'로 간주돼 반드시 안전 구역 내에 포함돼야 한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또한 설령 안전 구역 밖이라 하더라도 착륙대 종단으로부터 240m 이내에 설치된 시설물은 부러지기 쉬운 구조여야 한다는 별도의 안전 기준(공항 안전 운영 기준 제109조)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결국 무안공항의 시설은 설치 시점부터 규정을 잘못 해석하거나 간과한 채 방치된 '예고된 재앙'이었다는 것이 권익위의 결론이다.
'서류상 안전' 위해 안전 구역 축소한 정황 확인
▲무안국제공항의 시설 현황과 활주로 종단 안전 구역. 사진=국민권익위원회 제공
조사 과정에서 한국공항공사가 과거 행정 편의를 위해 안전구역 범위를 축소 관리해 온 사실도 밝혀졌다. 2007년 개항 당시 무안공항은 해당 시설의 둔덕 일부를 포함해 204m를 안전 구역으로 관리했으나, 2014년 규정 위반 지적을 피하기 위해 시설물을 제외한 199m로 구역을 축소 개정했다.
권익위는 이에 대해 “상위 규범인 설치 기준의 강행적 효력을 배제할 수 없다"며 장기간 해당 시설을 안전 구역 내 시설로 인식해 왔음에도 서류상 구역만 줄여 책임을 회피하려 한 점을 꼬집었다.
권익위는 이번 의결에서 인천국제공항의 사례를 대조군으로 제시했다. 2016년 인천공항에서도 이륙 중인 화물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방위각 제공 시설과 충돌하는 유사한 사고가 있었으나, 당시 시설이 평탄한 지형에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설치돼 있었던 덕분에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규정 준수 여부가 생사를 갈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는 게 권익위의 해석이다.
▲인천국제공항의 방위각 제공 시설(로컬라이저)와 활주로 종단 안전 구역 현황. 자료=국민권익위원회 제공
권익위 “국토부, 시설 다시 설치하고 안전 구역 재설정하라"
권익위는 주문을 통해 피신청인인 국토부 장관에게 방위각 제공 시설을 포함한 활주로 RESA를 재설정할 것과 콘크리트 둔덕에 설치된 시설물을 공항 안전 운영 기준 에 따라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재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권익위의 결정은 항공 당국의 무사안일한 시설 관리와 자의적인 규정 해석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협의회는 “권익위의 결정을 환영하고, 이를 기점으로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