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00원대 육박…대통령실 드디어 움직였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2.24 16:40

외환시장 ‘강공 모드’ 전환
與野, 고환율 대응 놓고 공방

외환당국 개입에 떨어지는 원·달러 환율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1.3원 오른 1484.9원으로 출발했으나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에 1460원대 중반까지 급락했다. [사진=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등세를 이어가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가, 24일 외환당국의 고강도 구두개입 이후 1450원대로 급락하는 등 롤러코스터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이 총동원된 가운데, 고환율 사태의 책임과 해법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24일 대통령실은 원화 가치 하락세가 이어지는 상황과 관련해 과도한 환율 쏠림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개장 전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오늘부터 좀 달라질 것"이라고 '변곡점'을 예고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도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구두개입 메시지를 내놨다. 이후 환율은 개장 직후 급락세로 돌아서며 오후 3시를 넘긴 시점에는 1440원대까지 떨어졌다. 장중 고점 대비 30원 넘게 빠지는 등 외환시장은 하루 만에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앞서부터 외환시장 쏠림에 대한 경고를 이어왔다. 하준경 경제성장수석은 지난 21일 공개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1월 이후 외환시장 쏠림 현상이 두드러져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원화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과도한 쏠림을 수수방관할 것이란 생각은 오판"이라고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원화 약세를 이용해 외환 투기세력에 경고 메시지를 낸 건 이례적이다.



그간 정부·당국의 연속된 조치에도 고환율 흐름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이 외환시장 안정 대책을 연일 쏟아냈다. 급기야 정부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삼성전자·현대차 등 7대 수출기업을 불러 보유한 달러를 가급적 빨리 팔아달라고 '협조'를 구했다. 그럼에도 환율은 이틀 연속 1480원대에 마감하며 2009년 3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1480원 고착' 조짐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1500원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고환율이 장기화하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연말 환율 종가 관리를 위해 환 헤지를 통한 대규모 달러 매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보건복지부도 23일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세부 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한국은행 책임론'까지 불거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대응 과정에서 한은이 단기 유동성 공급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원화 가치 하락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창용 총재는 2022년 PF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RP를 매입하고 최근에는 국고채도 매입했다"며 “단기유동성을 대거 공급해 원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부동산 PF 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아니라 땜질 처방을 위해 단기유동성 공급에 주력하는 것은 매우 문제"라고 지적하며 “여러 원인 중에서도 한은의 통화정책 실패와 총재의 책무 인식 부재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 총재가 '통화량 증가의 상당 부분은 ETF(상장지수펀드) 확대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 총재 주장대로 한은 통화량 M2(광의통화) 증가율은 8.5%지만 ETF 등 수익증권을 통한 유동성 증가를 제외하면 미국과 통화량 증가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며 “그런데도 여전히 미국보다 더 많은 유동성 공급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책임회피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과거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했던 발언까지 소환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원·달러 환율이 1440원을 넘었을 때 “환율이 폭등해 이 나라 모든 국민의 재산이 7%씩 날아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가"라며 윤석열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24일 논평을 통해 “야당 대표 시절 환율 1400원에도 '국가 경제 위기'를 외치던 사람이, 집권 후 1480원을 넘긴 상황에서는 입을 꾹 닫았다"며 “이재명 정부 대응은 무책임을 넘어 무능하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국민 노후를 담보로 한 무모한 외환시장 개입이나 기업 팔 비틀기로는 절대 환율을 안정시킬 수 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매력도를 높이는 근본 처방"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금융위기급 환란 상황임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해법도, 하물며 작은 방침조차 언급이 없다"며 “놀랍게도 지난 6월 26일 추경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尹 정부 비판에 '고환율'을 거론한 이후, 공식 발언에서 '환율'을 언급한 사례가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난 4월 17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긴급 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외환시장 상황을 강도 높게 우려한 바 있다. 그는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는 상황을 보고 고물가 문제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반에 상당한 위기가 현실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1400원이 위기의 현실화였다면 1500원 돌파를 앞둔 지금 상황은 국가경제의 붕괴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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