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900점 중반 이상 받아야”
“신용점수 변별력 사라져” 지적
최저신용자 제도권 밖 퇴출 우려
당국 “취약계층 금융 접근성 늘릴 것”
▲은행권 신용점수 기준이 상향되면서 대출 시장이 최고점 보유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은행권 신용점수 기준이 상향되면서 대출 시장이 최고점 보유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지속되는 가계대출 규제로 실제 상환 여력이 있는 차주도 1금융권에서 밀려나는 한편 서민층도 2금융권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강해지면서 대출 어려움이 극대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내준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가 950점을 넘어섰다.
대출규제가 본격화되기 전인 재작년엔 900점 초반대 신용점수가 최고 신용 구간으로 인정받았지만 현재 900점은 무난하게 대출이 나오기 어려운 수준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등을 앞두고 은행권이 대출문을 걸어잠그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수요가 몰리자, 같은 신용 1등급 구간에 속해도 900점 초반대 신용자는 대출이 나오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신한·우리·하나·KB국민은행에서 분할상환식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은 차주들의 평균 신용점수는 937.75점이었다. 전세자금대출 평균 점수는 928.5점으로 하단 925점, 상단 932점을 가리켜 900점 초반 수준에 몰렸다.
일반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평균 신용점수(KCB 기준)는 933.75점이었다. 대출이 가능한 평균 신용점수의 하단은 922점, 상단은 942점을 가리켰다. KCB 신용점수가 1000점 만점인 점을 감안하면 1등급 기준은 900~1000점으로, 이미 지난해부터 900점대 중반은 돼야 가장 유리한 조건의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가 꼽힌다. 정부가 대출 총량을 억제하면서 은행이 선별적으로 대출을 받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실제로 '신용점수 인플레 현상'은 지난해 대출 규제 전후 본격적으로 짙어졌다. 핀테크 기업 핀다가 지난해 5월 3~4주차의 대출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신용점수 900점 이상의 고신용자가 받은 2금융권 대출 약정 수는 3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방안이 발표됐던 3주 차 대비 4주차에 40.4%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점수가 차주의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대출 조건 구간을 나누는 수단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신용 점수를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소비자는 대출을 받을 때 금리나 한도 조건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받을 수 있도록 평소 금융 거래 횟수나 연체, 세금 납부, 통신비 등 비금융 정보를 관리한다. 작게는 대출 연체 관리부터 신용카드 사용도나 요금 납부, 공과금 납부 시기 등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상환 여력이 충분한 900점 초반대 신용자도 1금융권 대출에서 밀려나면서 점수가 지니는 변별력을 잃었다는 목소리다.
신용 점수 인플레로 일부 고신용자가 인터넷전문은행(인뱅)이나 카드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밀리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900점대 초반 이하는 시중은행에서 대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높은 이자의 2금융권으로 가는 것이다.
저신용자층의 체감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저축은행이 정책성 대출 상품 취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최저신용자들이 금융 공급에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신용점수 600점대 이하 저신용자에게 사잇돌2 대출을 내준 저축은행은 1분기 9곳이었지만 3분기 1곳으로 줄었다. 이에 취약차주와 최저신용자의 경우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이런 실태를 최근에서야 인지하며 금융권에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확대하라는 주문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는 포용적 금융 대전환 1차 회의에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저신용 신용대출이 급격히 줄어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크게 제약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정책서민정금융상품의 금리를 낮추고 금융권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도록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