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EU 8개국 관세 예고…EU도 반격 채비
“미국과 EU 무역전쟁 다시 시작”
갈등 악화 조짐에 증시·비트코인 위축…금·은 ‘또 신고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대(對)유럽 관세 카드까지 꺼내 들자 미국과 유럽 간 관세 전쟁이 '시즌2'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번 관세 위협이 단순한 무역 협상용 압박을 넘어 지정학적 힘을 지렛대로 삼으려는 시도로 해석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위험자산을 중심으로 급격한 매도세에 직면했다. 무역·관세 전쟁을 둘러싼 확실성이 더 이상 없다는 관측까지 나오자 자금이 안전자산인 금과 은에 쏠리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의사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을 상대로 2월 1일부터 대미 관세 10%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6월 1일에는 관세율이 25%로 인상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며 동맹국을 향한 압박을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영국과 독일이 이번 조치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국가로 지목된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대미 관세가 10%, 25% 추가로 부과될 경우 영국과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0.1%, 0.2~0.3%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맞서 유럽 각국은 유럽연합(EU) 차원의 보복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주요 회원국들이 최대 930억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EU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번 보복 조치는 이번 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할 때 활용할 지렛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EU는 지난해 미국과 무역 협상을 벌일 때 보복 관세를 이미 마련했지만 무역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내달 6일까지 유예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EU 8개국에 대한 관세를 예고하자 보복 관세가 이날 다시 논의됐고, 통상위협대응조치(ACI)도 별도로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2023년 도입 이후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지난해 4월 상호관세가 발표됐던 국면과 유사한 수준으로 격화됐다고 진단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베렌베르크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관세 문제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며 “다시 작년 봄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포드햄 글로벌 포어사이트의 티나 포드햄 창립자 역시 “미국과 EU 간 무역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6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사진과 '관세왕' 문구(사진=트루스소셜)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더 이상 무역 협상의 수단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무역적자 해소와 교역국의 '비관세 장벽' 제거를 명분으로 한국을 포함한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해왔다.
글로벌 금융사 ING의 카스텐 브르제스키 글로벌 거시경제 총괄은 “새로운 무역 긴장의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무역이나 관세에 대한 확실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이른 흐름을 반영하듯, 글로벌 금융시장은 위험자산을 중심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9일 한국시간 오전 11시 56분 기준, 미국 나스닥 100 선물지수는 전장 대비 1% 가량 하락하고 있고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1% 하락 중이다. 호주 S&P/ASX 지수, 홍콩 항셍지수 등도 떨어졌다. 다만 인공지능(AI) 투자 수혜 지역으로 평가받는 한국 코스피 지수는 주요국 가운데 드물게 상승세를 보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유로화와 파운드화가 약세를 나타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0.2% 하락한 유로당 1.1572달러로 떨어지며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 엔화는 안전자산 선호 속에 강세를 보였다.
블룸버그 달러 현물 지수도 이날 0.2% 가량 하락했다. 크레딧 애그리콜의 데이비드 포레스터 선임 전략가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으로 '셀 아메리카'가 다시 불붙었다"고 전했다.
가상자산 시장 전반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트코인 시세는 이날 장중 최대 3.6% 하락해 9만2000달러선을 한때 밑돌았다. 이더리움과 솔라나도 각각 4.9%, 8.6% 하락했다.
무역 갈등이 고조되자 안전자산인 금과 은은 이날 또 급등하면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날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장중 최대 온스당 4688.50달러까지 치솟았고 국제은값은 이날 사상 처음으로 94달러선을 돌파했다. 캐피탈닷컴의 카일 로다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위험이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다"며 “새로운 무역 불확실성이 성장 전망을 훼손하고 있고, 미국의 대외정책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금·은 상승에 완벽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