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관세 으름장’…K-반도체, 美투자전략 ‘고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1.20 16:41

美 “메모리 현지생산 않으면 100% 관세” 일방적 요구
D램 점유율 68% 삼성·SK하이닉스 겨냥 추가투자 압박
美·용인 동시투자로 ‘한계치’…“단기전략 변화 없을 것”
강행 시 가격경쟁 불리…“美도 손해 실제부과 못할 것”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 평택캠퍼스 라인. 연합뉴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 평택캠퍼스 라인.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우회적으로 겨냥한 미국 정부의 대미(對美) 투자 압박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넘어 'K-반도체의 심장'으로 불리는 메모리 반도체까지 미국에 공장을 지어 직접 생산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100%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미 미국에 현지공장 투자를 밝혔던 삼성과 SK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 전략에 변화가 있을 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美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중심 공급망 재편 의도' 분석

20일 반도체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마이크론의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밝힌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국내에선 단순한 압박을 넘어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까지 미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내 생산시설이 없는 한국산 메모리에 고강도 관세를 부과해 자국 기업인 마이크론과의 경쟁 구도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HBM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보다 노골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 상무부장관의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를 지렛대로 이용한 자국으로 대규모 투자를 끌어들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장악과 정치적 치적 쌓기 용도라는 것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를 특정한 것도 한국 반도체 기업을 우회적으로 겨냥할 의도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메모리 반도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선 추가 대미투자의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내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이미 한계치에 근접해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올해 설비투자는 3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미국 현지 투자 부담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을 위해 37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올해 연말 가동 개시를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3나노(㎚·1㎚=10억분의 1m) 이하 최첨단 공정을 갖춘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를 투입해 반도체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美 현지 생산시설 투자, 국내 용인 반도체 중장기 투자로 '여력 한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 = 용인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 = 용인시.

삼성과 SK의 국내 반도체 투자 부담도 막중하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한 용인 반도체 국가 산단에 36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 6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역시 600조원 규모의 용인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중장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미국 내 메모리 생산 투자까지 요구받을 경우 재무적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두 기업이 단기간에 대미투자 전략을 급격히 수정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장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은 열어두되 현재 진행 중인 투자 계획은 그대로 가져갈 것으로 내다본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 전략 등) 변화 없이 일단은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며 “다만 미국측 발언의 진의와 향후 세부 내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로 관세가 부과되는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즉, 고율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마이크론 제품과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와 AMD 등 글로벌 빅테크가 자사 AI 가속기에 한국산 HBM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마이크론 제품을 우선 채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다.


관세 강행 시 'K-반도체 의존' 美IT기업에 비용 상승 직격타

HBM4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 마련된 SK하이닉스 부스에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4 실물이 전시돼있다. 연합뉴스.

반면에 현실적으로 '관세 100% 부과'는 쉽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도가 높고, 단기간 내 이를 대체할 마땅한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IT기업들에 원가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미국 마이크론이 25.8%,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합산 67.8%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공급 주도권을 한국 기업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마이크론의 생산능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크게 못 미치는 가운데 최근 '메모리 쇼티지(공급 부족)'까지 겹치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원하는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K-반도체에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미국 IT기업들은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한국산 메모리를 구매하거나, 마이크론 제품을 받기 위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선택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번 반도체 관세 논란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통상 협상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명시된 '불리하지 않은 대우 원칙'에 따라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그럼에도 업계는 한·미 정부간 추가 통상협상 여부와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며, 추가 통상협상 성패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장기 투자 전략, 나아가 K-반도체의 선택지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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