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기 때문에, 봉쇄가 단행되면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물류비·물가·금융시장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원유뿐이 아니다. 천연가스(LNG) 공급에 병목을 만들 우려도 있다. 특히 LNG는 파이프라인 우회가 거의 불가능해 선박 운항이 멈추면 공급이 즉각적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고, 이들 원유가 대부분 호르무즈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의 석유비축량은 약 200일 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소비량을 감안하면 약 2개월 분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LNG는 45일 그리고 석탄은 15일 분 정도이다. 반면 원자력발전을 위한 우라늄은 3년 분 정도가 비축되고 있다.
당장의 경제상황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정도에 따라서 민감하게 바뀔 것이다. 에너지 당국도 호르무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대응이고 정책은 아니다. 에너지 정책에서는 이미 이런 상황이 고려되었어야 한다.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는 목적이 이러한 급변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여년의 우리 에너지정책은 LNG를 지속적으로 늘렸다. 민간발전사 우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의 안정화 등은 결국 LNG 발전량의 증가로 이어졌다. 온실가스 간접배출분을 포함하면 석탄발전과 LNG발전은 비슷한 수준임에도 석탄발전을 퇴출시키고 LNG발전을 늘린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탈원전 정부에서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인 것도 재생에너지보다는 LNG 발전소 증가로 이어졌다. 천연가스 공급의 취약성 그리고 액화천연가스의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빈번하다는 사실은 당연히 에너지 정책에 반영되었어야 할 것들이다.
지금 제시되고 있은 대응책은 석탄발전량과 원자력발전량을 늘리는 것이다. 석탄발전은 석탄발전량 80% 상한제를 해제하면 늘일 수 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량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법률과 규제가 허락하는 최대치로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자력발전량을 더 늘리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원전가동률은 80% 수준이지만 더 오래된 원전을 운영하는 미국의 가동률은 90%가 넘는다. 원전 1호기당 불시정지횟수 등의 안전운전을 확인할 수 있는 간접적인 지표들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동률이 낮은 것은 규제의 문제이다. 규제의 문제는 규제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규제는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규제기관이 강하면 규제의 수준은 높아진다. 더 안전해진다고 볼 수 있다. 사업자가 강하면 규제의 수준이 낮아 지지만 경제성은 더 좋아진다. 이 양자의 팽팽한 밀고 당김이 당사자에게는 피곤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최적의 안전성과 최고의 경제성을 얻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통제 본능이 있다. 즉 감독자는 피감기관을 점점 더 감독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통제의 욕구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검토하여야 한다.
30년쯤 전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원자력발전사업자인 당시 한국전력이 구매하는 핵연료에 대해 검사하고 검사필증을 부여하였다. 문제가 있는 핵연료를 구매하면 운전상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는 어련히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인수검사의 차원에서 검사할 것이었다. 그러나 규제담당자는 한사코 해당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후 검사필증을 부여했던 핵연료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규제를 폐지했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폐지하는 과정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당 규제자의 밥줄 또는 다른 전문성의 부재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
원자력발전소 정기점검중 규제기관의 입회가 필요한 시점에서 규제자가 빨리 입회를 하거나 정기검사를 마치고 재가동 승인을 하는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으로 안전성을 훼손하지 않고 가동률을 높일 방안이 있을 것이다. 계속운전 심사 때문에 멈춰있는 원전이 있다면 심사를 가속할 방안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기술적인 규제는 그대로 두더라도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것 등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또 미국은 어떻게 하길래 가동률이 90%가 넘는지를 보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면 원자력계는 이에 부응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