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뉴이재명 논쟁과 유시민과 김어준의 프레임 정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3.27 12:45

김병헌 전국취재본부장

김병헌

▲김병헌 전국취재본부장

우리정치가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해석 싸움'이 되었을까. 요즘 정치권을 보면 사건은 하나인데 해석은 열 가지다. 특히 '뉴이재명'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논쟁은 단순한 노선 차이가 아니라, 누가 이 판의 해석권을 쥐느냐의 싸움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치·이익·조정'이라는 3분류 틀, 여기에 심리 모델인 ABC 이론까지 끌어와 정치 현실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겹쳐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ABC 이론은 원래 개인의 감정 형성을 설명하는 도구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이 감정을 만든다는 구조다. 이걸 정치에 적용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다만 특정 집단이나 인물의 행보를 해석하는 틀로 사용할 경우, 그것이 설명인지 아니면 특정 방향의 해석을 강화하는 장치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여당의 흐름을 보면, 이 대통령은 실용·확장·조정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 내 일부 강성 흐름은 가치·선명성·일관성을 강조한다. 겉으로는 '친명 vs 비명', 혹은 '당권 vs 대통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집권 이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긴장에 가깝다. 야당일 때는 선명성이 무기지만, 집권하면 조정이 필수다. 정책은 수정되고 속도는 조절된다. 김대중 정부의 DJP연합, 노무현 정부의 FTA와 파병, 문재인 정부의 정책 수정 역시 이런 '조정'의 사례였다. 즉, 변화 자체는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 과정이다.



지금 논쟁에서는 이 '조정'이 종종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현실적 선택이 '변질'로,전략적 판단이 '이익 추구'로 읽히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기서 '가치 vs 이익'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 틀은 정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특정 해석을 강화하는 효과도 낳는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틀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널리 알려진 '프레이밍 효과'와도 맞닿아 있다.


유시민은 정치 현상을 '가치·이익·조정'이라는 구조로 설명해왔다. 이 틀은 이해를 돕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한 구도로 읽게 만들 수 있다는 한계도 동시에 가진다. 특히 변화나 조정이 '가치에서 이탈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키운다는 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다. 김어준 역시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해석의 방향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왜 이렇게 바뀌었는가"“이것이 원래의 가치와 맞는가" 이 질문들은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특정 기준(대개 '가치')을 중심에 놓고 재평가를 유도하는 효과를 낳는다. 두 사람 모두 '해석을 만드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번 논쟁의 시작이 의도된 설계인지, 아니면 해석의 한 방식인지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어 일부에서는 의도적 프레임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금 민주당 내부 갈등도 이 구조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실에 맞출 것인가"“기준을 유지할 것인가" 이 두 축이 충돌하고 있다.노선 차이가 정체성 논쟁으로 확장된다. 정책 논쟁이 아니라 “누가 더 옳은가"의 문제가 되면서 중간은 사라진다. 일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경력 즉 운동권이 아닌 행정가 중심 이력이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이것 역시 갈등의 핵심 원인이라기보다는, 기존 인식과 결합해 해석을 강화하는 요소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단순한 계파 갈등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문제다. 노선 충돌에 해석 경쟁이 결합된 구조인 것이다. 갈수록 점점 더 해석 경쟁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정치와 정책의 중요한 사안들이 '무엇을 하느냐'에서 '어떻게 해석되느냐'로 이동하는 순간, 모든게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재료가 된다. 같은 결정도 '개혁의 진화'가 될 수도 있고, '가치의 후퇴'가 될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프레임을 점검하는 태도다. 이것이 정책 판단인지,아니면 특정 해석 틀 안에서 내려진 결론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유권자는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해석의 단순 수용자가 된다.


정치는 복잡한 물건이다. 가치와 이익은 분리되지 않고, 대부분의 결정은 그 사이 어딘가 있다. 복잡함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순간, 정치는 설명을 잃고 대립만 남는다. 지금 벌어지는 '뉴이재명' 논쟁의 본질도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며, 정책이 아니라 프레임이고 현실이 아니라 서사의 경쟁이다. 우리는 사실처럼 보이지만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진 해석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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