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린 강남 vs 풀린 비강남… 분상제가 낳은 ‘기형적 가격표’의 명암
공급절벽이 만든 ‘배짱 분양’ 이면엔 공사비가 만든 ‘슬픈 원가’
청약 시장 ‘옥석 가리기’ 가속… “시세차익 없으면 통장 안 던진다”
▲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6재정비촉진구역(노량진6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일대는 약 15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며, 노량진 뉴타운 첫 일반분양을 앞두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서울 분양시장의 가격 질서가 무너졌다. 같은 20억원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강남의 20억원은 시세 차익이 보장된 '로또'이고, 노량진의 20억원은 상승한 공사비와 사업비가 반영된 '원가'다. 이 기묘한 역전이 서울 주택시장을 둘로 쪼개고 있다.
7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노량진 뉴타운 6구역 '라클라체자이디파인'은 전용 84㎡ 최고 25억8510만원, 59㎡ 22억원 수준의 분양가로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특히 전용 59㎡ 기준으로는 강남권 분양가를 웃도는 상징적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시장에서는 당초 84㎡ 기준 17억~18억원 수준이 거론됐지만 실제 가격은 이를 크게 웃돌았다.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는 반응과 함께 “입지와 미래 가치를 고려하면 검토할 수 있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오며, 가격 자체보다 '이 가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시장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량진뿐만이 아니다. 흑석동 역시 평당 8000만원 시대에 진입하면서 강남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흑석 11구역 '써밋더힐'은 3.3㎡당 8500만원 수준이 예상된다. 한강 조망과 반포 인접 입지를 앞세워 '서반포'로 불리는 이 일대는 동작구를 사실상 '비강남 하이엔드 시장'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같은 시기 서초구 잠원동 '오티에르 반포' 전용 59㎡ 최고 분양가는 20억4610만원으로, 노량진보다 1억6000만원가량 낮다. 여기에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 드 서초' 역시 전용 59㎡ 최고 분양가가 약 18억60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되며, 주변 시세 대비 수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공급됐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시세보다 크게 낮은 가격이 형성되면서 이른바 '로또 분양'으로 불렸고, 특별공급 26가구 모집에 1만9533명이 몰려 평균 75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생애최초 유형에서는 1897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이 나오기도 했다.
입지 서열이 높은 강남권 단지가 더 낮은 가격에 공급되고, 비강남권은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이 형성되는 '분양가 역전' 현상이 현실화된 것이다.

▲동작구 하이엔드 vs 강남권 분상제 단지 분양가 현황, 노량진 6구역과 흑석 11구역 등 비강남권 대장주 단지들의 분양가가 상급지인 서초구 잠원·서초동 분양가를 추월하며 시장의 가격 질서가 재편되는 모습이다. 정리=장혜원 기자
동작구의 역습… 분상제 비적용 지역이 견인하는 '서울 분양가 하한선'
이 같은 역전의 배경에는 분양가상한제가 있다. 강남·서초·송파·용산 등은 분상제 적용으로 분양가가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억제되는 반면, 노량진과 흑석은 비적용 지역으로 공사비와 금융비용, 시장 가격이 그대로 반영된다. 결국 같은 26억원이라도 출발점이 다르다. 강남은 할인된 진입 가격이고, 노량진은 상승한 비용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장 공인중개사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량진 3구역 일대 한 중개사는 “평당 6500만원 정도를 예상했지만 지금은 7000만원 중반에서 8000만원까지 올라온 것이 주변 시세를 반영한 결과"라며 “인근 단지 실거래가가 22억~23억원인데 신축이면 그 이상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는 “분양가만 보면 비싸 보이지만 시세 기준으로 보면 크게 틀린 가격은 아니다"며 “이번 가격 역전은 시장 문제가 아니라 분양가상한제에서 비롯된 구조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신반포21차를 포스코이앤씨가 재건축 한 '오티에르 반포' 전경. 포스코이앤씨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 드 서초' 조감도. DL이앤씨 제공.
즉 강남이 저렴해진 것이 아니라 분상제로 가격이 인위적으로 눌려 있는 상태라는 해석이다. 이 관점에서는 노량진의 가격 역시 비정상이라기보다 시장 가격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다만 상승의 이면도 분명하다. 조합원 부담은 빠르게 늘고 있다. 노량진 8구역 재개발 현장에서는 “분담금이 당초보다 2~3억원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입주권 매도를 고민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프리미엄은 상승했지만 거래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가격 상승이 모든 참여자에게 이익으로 작용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가격을 떠받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는 공급 부족이 지목된다. 현장 중개업소들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구조"라며 “매물이 없는데 가격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간 재개발이 지연되며 공급이 묶인 점이 가격 상승을 지지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공급 실종이 만든 '배짱 가격'… “떨어질 이유가 없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6재정비촉진구역(노량진6구역) 재개발 현장 게이트3 앞에서 바라본 모습. 공사장 너머로 여의도 63빌딩이 보이고 있다. 7호선 장승배기역 5번 출구, 9호선과 1호선이 교차하는 노량진역 6번 출구로부터 각각 도보 5분, 10분 이내 거리의 역세권에 위치했다. 사진=장혜원 기자
업계 역시 이를 '공급 지연이 만든 구조적 상승'으로 보고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주택 가격은 공급 사이클에 따라 움직이는데, 2017~2021년 상승기 당시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며 “당시 충분한 공급이 있었다면 이후 금리 상승 국면에서 가격이 더 안정적으로 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시장은 공급 부족 상태에서 정책 대출과 규제 완화가 맞물리며 수요가 유입되자 빠르게 반등한 구조"라며 “내부적으로는 상승 압력이 우세하고 하락 요인은 금리 등 외부 변수에 제한돼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파트는 착공부터 입주까지 최소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공급을 확대하더라도 실질적인 물량은 2030년 전후에나 반영될 것"이라며 “이미 공급 타이밍을 놓친 상황에서 단기간 내 가격 안정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특히 서울은 가구 수 증가와 지역 간 인구 이동으로 수요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방 중소도시부터 조정이 나타나고 수도권으로 수요가 집중되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써밋더힐 조감도. 대우건설제공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추가 상승 기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현장에서는 “노량진은 평당 8000만원 이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현재 가격조차 저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시에 시장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인중개사들은 “일반분양보다 입주권 시장이 더 현실적인 가격 기준"이라며 “총투자금 기준으로 이미 26억~27억원 수준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청약이 아닌 입주권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완판 가능성은 있지만 확신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이 동시에 제기된다. 분양가 부담이 커진 만큼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청약 쏠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본지가 만난 복수의 분양 홍보대행사와 공인중개사들 역시 “일반분양은 소화될 가능성은 있지만 경쟁률은 가늠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시장 열기도 빠르게 식고 있다. 올해 1분기 서울 아파트 1순위 청약 경쟁률은 38.3대 1로 직전 분기(288.3대 1) 대비 급감하며 13개 분기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청약자 역시 10만명에서 2만명대로 줄었다. 수요자들은 더 이상 '묻지마 청약'에 나서지 않고, 시세 차익이 확실한 단지만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이 시장의 본질은 가격이 아니라 가격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분양가상한제는 강남에서는 시세차익을 만들어내고, 비강남에서는 공사비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를 낳았다. 그 결과 강남 당첨자는 '로또'를 얻고, 비강남 실수요자는 '원가'를 감당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차익 실종된 청약 시장 '옥석 가리기'가 생존 전략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이갤러리 내에 설치된 라클라체자이디파인 견본주택에 마련된 단지 모형. 노량진 뉴타운 6구역 재개발을 통해 조성될 아파트 단지 전경이 구현돼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노량진 현장에서도 이 같은 인식은 분명하다. 노량진 3구역 한 조합원은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구조적 불균형이 생긴 것은 맞지만, 결과적으로 반포·서초 쪽이 더 불리한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노량진과 동작 일대는 앞으로도 상승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서초동 일대 공인중개사들도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노량진이 비싸진 것이 아니라 강남 분양가가 분상제로 눌려 있는 것"이라며 “반포는 시세 대비 저렴하게 공급돼 당첨 시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이고, 노량진은 공사비와 시장 가격이 반영된 정상 가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는 “강남은 청약으로 싸게 들어가는 시장이고, 비강남은 분양 단계에서 이미 높은 가격을 감수해야 하는 시장으로 완전히 나뉘었다"며 “같은 20억원대라도 의미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정도 자금이면 반포 청약을 노리는 수요도 적지 않다"며 “노량진과 흑석은 실거주 목적이 아니라면 접근이 쉽지 않은 시장이 되고 있다"고 살명했다.
장기간 서초 일대 다가구·빌라 투자를 이어온 한 투자자는 분양가상한제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그는 “수년간 재건축을 기다려온 투자자 입장에서는 청약 당첨 한 번으로 수억원의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구조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투자 과정과 무관하게 단기간에 큰 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분상제로 강남 분양가가 눌리면서 일부 당첨자에게 이익이 집중되고, 재개발·재건축을 기다린 투자자나 실수요자는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됐다"며 “시장 내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