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의 부동산현장] “AI 켜졌지만, 팹은 아직 지도 위” 반도체 투자 광주·전남 현실은?

장혜원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6.30 09:54

정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메모리 팹 4기 구상
광주공항·군공항 이전, 대규모 부지 확보 첫 관문
산업용수·전력망·AI 인프라가 실행력 가를 핵심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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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첨단3지구 일대에서 기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가 AI·반도체 산업 거점으로 육성되는 가운데 대규모 산업용수·전력 인프라 확보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사진=장혜원 기자

“반도체 공장 들어온다고 땅 보러 온 사람은 아직 없어요. 말은 많은데, 공항이 먼저 옮겨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30일 낮 에너지경제신문이 광주송정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얘기에 잠시 웃었다. 정부가 광주·전남권을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키우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KTX를 타고 내려온 취재진 눈앞의 송정역 주변은 아직 들뜬 개발 열기보다 평일 한낮의 일상에 가까웠다.


정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총 800조원을 투자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기씩, 모두 4기의 메모리 반도체 팹을 구축하는 구상을 내놨다. 수도권에 집중된 생산 기반을 분산하고, 전력·용수·부지·인허가를 정부가 뒷받침해 메모리 생산 능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자료에는 광주·전남권이 인프라와 정주 여건, 인력을 종합 고려한 새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적시됐다.



현장에서는 “어디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풀어야 했다. 광주송정역에서 광주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멀지 않았다. 광주공항과 군공항 부지는 대규모 산업단지 후보지로 거론돼 왔다. 넓은 부지와 KTX역, 도심 접근성이 장점이다. 공항 터미널 앞 주차장에서는 국내선 이용객과 차량이 오갔지만, 활주로 너머의 넓은 땅은 여전히 항공기와 군 시설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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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항 전경과 공항 진입도로 모습.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가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로 거론되는 가운데, 이전 일정과 산업용수·전력 인프라 확보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사진=장혜원 기자

공항 주변 주민과 택시기사들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반도체가 아니라 군공항 이전이었다. 군공항과 민간공항 이전 논의는 오랜 기간 지역의 숙제로 남아 있다. 군공항은 소음 문제와 이전 후보지 선정, 중앙정부 지원 문제 등이 얽혀 있어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한 지역 주민은 “공항이 옮겨져야 개발도 할 수 있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얘기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팹은 통상 수백만㎡ 단위의 부지와 안정적인 전력·용수 공급망을 요구한다. 군공항 이전 부지는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이전 자체가 선행 조건이다. 결국 '부지가 있다'는 것과 '반도체 공장이 곧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장이다. 광주공항 주변에서 만난 한 운전기사는 “공항만 나가는 게 아니라 군공항까지 같이 이전돼야 하는데, 이건 광주시만의 힘으로 풀 일이 아니다"며 “정부가 재원과 이전 방안을 확실히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100만t" 숫자 뒤에 남은 물음표

광주 반도체 구상의 또 다른 시험대는 물이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거점 조성과 관련해 전력과 용수 인프라를 책임지고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물은 단순히 강물이 흐르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가뭄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수 확보, 취수·송수관로, 정수·재이용 설비, 초순수 생산시설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광주공항 인근에서 황룡강 쪽으로 향하자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줄기와 제방, 주변 농지와 도로가 이어졌다. 강은 흐르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한 물길이 곧바로 반도체 공정용 물을 뜻하지는 않았다. 반도체 제조에는 미세 불순물까지 제거한 초순수가 필요하다. 취수량이 충분하더라도 정수 과정의 비용과 회수율, 폐수 처리 능력, 가뭄 시 공급 우선순위까지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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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황룡강 일대. 정부가 광주·전남권을 대규모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안정적 산업용수 확보와 취수·정수 인프라 구축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사진=장혜원 기자

현장에서는 물 부족에 대한 인식도 엇갈렸다. 일부 주민은 장성댐과 영산강 수계, 광주의 기존 상수도 공급 체계를 들어 “과거보다 물 사정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가뭄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팹 수요가 더해질 경우 생활·농업·산업용수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지역 관계자는 “강물을 바로 공장에 쓰는 구조가 아니라 저수지와 송수 체계, 정수시설을 거쳐야 한다"며 “물의 양도 중요하지만 수질과 공급 안정성이 더 큰 과제"라고 말했다.



광주시 반도체AI 관련 부서 역시 정부 발표 직후에는 구체적 공급 경로와 광주 배정 물량을 확인하는 단계라는 입장을 보였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부가 언급한 산업용수 수치와 관련해 “정부 발표를 보고 있는 중"이라며 향후 발표 내용과 협의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는 반도체 유치의 성패가 투자 총액보다 '물길의 설계도'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대형 팹은 착공 전부터 수년간 용수와 전력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 입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로 길이, 취수원, 저장시설, 펌프장 위치와 비용을 구체화하기도 어렵다. “하루 몇십만t, 몇백만t 공급 가능"이라는 숫자가 실제 공장 가동 시점의 공급 보증으로 이어지려면, 공학적 설계와 재원 조달, 환경 인허가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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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첨단3지구 일대 기반시설 공사 현장. 배수로와 공사 장비가 맞닿은 곳에서 개발이 진행 중인 가운데, AI·반도체 산업 확장을 뒷받침할 용수·전력 인프라 구축이 과제로 꼽힌다. 사진=장혜원 기자

GIST·첨단3지구, '광주의 강점'은 이미 작동 중

다만 광주가 빈 도화지는 아니다. 북구 GIST와 첨단3지구로 이동하자 분위기는 공항권과 또 달랐다. 넓은 도로와 연구·산업 시설, AI 관련 인프라가 이어졌다. 광주는 국가AI데이터센터와 AI집적단지, GIST를 중심으로 AI 연구와 인력 양성 기반을 꾸려 왔다. 정부도 GIST Arm스쿨 개교와 남부권 연합공대 인력 양성 등을 통해 반도체 인력 공급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의 강점은 반도체 대기업 팹을 당장 세울 수 있는 완성된 제조단지라기보다, AI와 연구 인프라를 반도체 산업과 연결할 수 있는 기반에 있다. AI 반도체 설계, 팹리스, 패키징, 장비·소재, 데이터센터와 연계한 실증 분야에서는 GIST와 국가AI 인프라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대규모 메모리 전공정 팹은 전력과 용수, 부지, 협력사 생태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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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경. 광주가 AI·반도체 산업 거점으로 육성되는 가운데 GIST는 AI 연구와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산학협력의 핵심 기반으로 꼽힌다. 사진=장혜원 기자

정부가 내놓은 구상은 단순한 지역 유치전이 아니다. 수도권 팹 집중의 한계를 넘기 위해 새로운 생산 거점을 만들겠다는 산업 전략이다. 정부는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생산 기반이 전력·용수·부지 측면에서 한계에 닿고 있다고 보고, 서남권을 새로운 생산 축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광주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800조원'이라는 숫자의 크기만큼이나 실행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공항 이전은 부지를 열어야 하고, 황룡강과 영산강 수계는 물길의 안정성을 증명해야 하며, 첨단3지구와 GIST는 연구 인프라를 기업의 실제 투자와 일자리로 연결해야 한다.


광주송정역으로 돌아오는 길, 택시기사는 “큰 공장이 들어와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은 따라온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곧 “말만 남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광주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는 이제 발표를 마쳤다. 다음 과제는 물과 전력, 부지와 이전, 그리고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먼저 확보하느냐다. AI는 이미 광주에서 켜져 있다. 반도체 팹은 아직, 지도 위의 선을 공사 현장의 선으로 바꿔야 한다.



장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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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장혜원 기자 입니다. 건설부동산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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