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 노력, 나토 동맹 벽 실감…확실한 대안 강구해 도약 약속”
방위사업청 “지정학적인 한계… 수출 4강 진입의 쓴약 삼을 것”
캐나다 정부 “상호 운용성 최우선…독일과 잠수함 12척 계약”
외신 보도 “경제적 파급 효과 주효…향후 조달 과정 험난할 것”
▲한화오션 잠수함 모형. 사진=한화오션
캐나다 정부가 자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잠수함 함대를 구축할 사업자로 독일의 TKMS를 선정하며 한화오션 대신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 NATO) 동맹국과 유럽의 손을 들어줬다. 한화오션과 방위사업청은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큰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도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7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월요일(현지시간) 핼리팩스에서 이 같은 결정을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 10개월 동안 한국과 독일이 캐나다에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내세우며 벌여온 치열한 수주전이 막을 내리게 됐다.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기 전 이 소식을 발표한 카니 총리는 이번 잠수함 구매가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방 조달 사업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캐나다 현지 매체 더 글로브 앤 메일(The Globe and Mail)에 따르면 카니 총리는 “이 잠수함들은 우리의 방위 산업 기반을 강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과의 파트너십을 심화시키며 캐나다 기업들이 유럽 공급망에 진출할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카니 총리는 TKMS의 잠수함이 나토 파트너국들과 완전히 상호 호환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TKMS가 나토 동맹국의 3분의 1 이상에 잠수함을 공급하는 “전 세계 해군의 선도적인 잠수함 공급 업체"라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이번 결정에 따라 캐나다는 노르웨이와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한 독일 TKMS에 최대 12척에 달하는 잠수함 계약을 넘기게 됐다. 캐나다·독일·노르웨이는 모두 1949년에 창설된 서방 군사 동맹인 나토의 회원국인 반면, 한국은 해당 사항이 없다. 카니 총리에 따르면 TKMS는 캐나다의 주문 물량을 우선적으로 배정해 2034년까지 4척의 잠수함을 인도하기로 약속했다.
매체는 캐나다 정부의 이번 잠수함 선정 소식이 극비리에 부쳐졌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소식통은 캐나다 정부가 조달 규모가 방대하고 상장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업적 민감성을 고려해 발표 전 관련 직원들에게 비밀유지계약서(NDA) 서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캐나다의 결정이 사전에 알려지면서 TKMS의 주가는 최대 12.9% 급등해 약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길고 험난할 수 있는 조달 과정의 초기 단계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통상적인 대형 국방 조달 절차와 마찬가지로 독일은 이제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됐지만 본격적인 계약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 사업의 규모는 잠수함 자체 건조에만 200억~300억 달러, 향후 운영 및 유지보수, 업그레이드에 400억~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니 총리는 총 계약 규모 공개를 거부하며 “캐나다에 가장 유리한 고지를 유지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협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카니 총리는 지난 주말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과 “오랜 시간 통화"를 갖고 캐나다의 이번 선택을 알렸고 아시아 국가인 한국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잠수함 최종 도입 수량에 대해서도 “최대 12척"을 구매할 것이며 최종 수량은 협상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당초 캐나다 정부는 한화오션의 KSS-III 배치(Batch)-II와 TKMS의 212CD 모델 모두 자국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평가한 바 있고, 결국 각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칼턴 대학교의 국방 정책 연구 담당 필립 라가세 교수는 국방 계약을 '주택 리모델링'에 비유했다. 그는 “계약자들은 서명을 받아내기 위해 달이라도 따줄 것처럼 약속하지만 막상 계약을 맺고 나면 제때 나타나지 않고 무례해지고 원래 계획을 조금만 수정해도 엄청난 비용을 청구한다"며 “앞으로 잠수함 문제에 있어 향후 10년이 순탄치 않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라가세 교수는 독일이 기술적 요구 사항과 경제적 이익 측면에서 한국을 앞섰을 것으로 보이며 “친유럽 성향의 캐나다 총리의 존재도 결코 독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가 비유럽 국가 중 가장 유럽적인 국가라고 여러 차례 언급해 왔다.
매체는 이번 잠수함 구매가 캐나다 왕립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상징적인 수준 이상의 실질적인 수중 전력을 갖추게 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캐나다는 1960년대 냉전 시대 이후 새 잠수함을 구매한 적이 없고, 현재 보유 중인 중고 잠수함 4척 중 통상 1척만이 작전에 투입 가능한 실정이다.
작년 8월부터 한화오션과 TKMS, 양국 정부는 캐나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우 공개적인 수주전을 벌여왔다. 카니 정부는 이 치열한 경쟁을 활용해 미국 보호주의에 맞서 자국의 산업 역량을 보존하고 확대하려는 '캐나다 우선주의' 산업 정책에 부합하는 투자 약속을 얻어냈다. 한화오션은 700억 달러 이상의 무역·투자와 2026년부터 2044년까지 매년 2만5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으나 최종 승자가 된 TKMS 측은 캐나다 전역에 걸쳐 1670억 달러의 경제 활동을 창출하고 86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내며 프로젝트 기간 동안 65만 개의 연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화오션은 CPSP 수주 경쟁에서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화오션은 7일 입장문을 통해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우리 잠수함의 뛰어난 성능, 해군의 성공적인 잠수함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수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나토 동맹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며 “진인사(盡人事)의 자세로 임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이번 결과는 전적으로 한화오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이번 수주 경쟁을 통해 확인된 과제들을 면밀히 분석해 확실한 대안을 강구하고 'K-해양 방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도약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동안 많은 성원을 보내준 국민 여러분과 열과 성을 다해 지원해 준 정부·국회·해군·방위사업청 등 군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수주 경쟁에 함께한 모든 기업 관계자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방위사업청도 TKMS의 손을 들어준 캐나다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아쉬움을 삼켰다.
방사청은 “정부와 기업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대응해 온 만큼 이번 결과가 기대했던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며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으로 기술력의 열위가 아닌 '지정학적 한계' 등 전략적 여건의 불리함을 직접 언급했다.
비록 최종 수주 도장은 찍지 못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는 게 방사청의 시각이다. 불과 수십 년 전 독일로부터 잠수함 건조 기술을 전수받으며 걸음마를 떼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그 기술의 '원조국'을 상대로 성능과 납기 등 모든 지표에서 팽팽한 접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방사청은 이번 결과를 '방산 수출 4강' 진입을 위한 쓴약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이와 관련, 무기 판매 외 진입 장벽을 뚫기 위한 획기적인 현지화 전략을 수립하고 국방 인공지능(AI) 대전환에 속도를 내 기술 초격차를 벌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아울러 수주 여부와 별개로 이번 경쟁을 통해 물꼬를 튼 캐나다와의 국방·방산 네트워크는 향후 타 분야 협력을 위해서라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용철 방사청장은 “이번 치열한 수주전에서 얻은 뼈저린 교훈과 경험이야말로 향후 초대형 방산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강력한 도약대가 될 것"이라며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