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코퍼’ 톤당 1만4455달러로 신고가
경기 호황보다 AI·전기화·공급 제약이 가격 견인
“구조적 공급부족…1만7000달러 찍는다”
맥쿼리 “수요공급과 강세론 괴리 커” 지적도
▲(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경제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구리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구리 현물 가격은 전장 대비 2.03% 오른 톤당 1만4455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구리 가격은 지난 4일 톤당 1만4195달러를 기록하며 약 3개월 만에 1만4000달러선을 웃돈 데 이어 이날까지 고점을 높이고 있다.
이날 구리 가격 급등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이 자국 내 광물 가공을 장려하기 위해 구리 및 코발트 정광 수출을 공식적으로 금지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나타났다.
통상 구리 가격 상승은 글로벌 경제 활동의 확장을 나타내는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구리는 건설과 전자제품, 운송을 비롯해 AI 관련 산업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핵심 산업용 금속이다. 이처럼 산업 전반에 활용돼 실물경제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닥터 코퍼'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사상 최고가를 단순히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CNBC에 따르면 바차트의 윌리엄 오스나토 원자재 데이터 리서치·분석 디렉터는 “구리 가격 상승을 지지하는 핵심 배경은 AI 산업의 급속한 확장을 지원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수요"라며 “구리값 상승을 뒷받침했던 전통적인 광범위한 경제 성장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제한적인 공급도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리 채굴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데다 새로운 광산을 개발해 실제 생산에 들어가기까지 약 10년이 걸릴 수 있어 단기간에 공급을 확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위드머 금속 리서치 총괄은 공급 측 요인이 구리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규 광산을 통한 공급 증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기존 광산의 생산 차질까지 발생하면서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에서도 폭설과 폭우, 강풍 등 악천후로 광산 운영에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정책과 중국의 구리 스크랩 단속 조치도 올해 글로벌 구리 공급을 빠듯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CNBC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반제품 구리와 구리 함량이 높은 파생제품 수입에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한 바 있다.
구리 수요 역시 견조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경기 호황보다는 전기화 확대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전력망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 중국은 최근 약 5740억달러(약 800조원)를 전력망 고도화에 투자하는 대규모 계획도 발표했다.
오스나토 디렉터는 최근 구리 시장의 변화를 두고 “닥터 코퍼에게는 분명 새로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년간 구리 가격 추이(사진=네이버금융)
구리 가격이 중장기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광물 전문매체 마이닝닷컴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BMI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공급 압박과 관세 정책, AI 산업 성장 기대감 등이 “구리 가격을 연이어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있다"며 올해 구리 평균 가격 전망치를 기존 톤당 1만1900달러에서 1만27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BMI는 구리 가격이 2028년 평균 톤당 1만3500달러, 2029년 1만5000달러, 2030년 1만58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따른 수요와 구조적인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서 2035년에는 톤당 1만7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맥쿼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구리 가격을 둘러싼 강한 낙관론과 실제 수요공급 펀더멘털의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맥쿼리에 따르면 구리 재고는 2025년 초 이후 87만톤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44만4000톤이 늘었고 올해 들어서도 현재까지 42만9000톤이 추가로 쌓였다.
공급 증가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 콩고의 '카모아-카쿨라' 구리 광산, 인도네시아의 '그라스버그' 구리 광산에서의 운영 차질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광산 공급이 1.3% 증가한 뒤 내년에는 증가율이 4.4%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수요 전망치는 하향 조정했다. 맥쿼리는 올해 글로벌 구리 수요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8%로 낮췄다. 중국의 수요 증가율 전망치는 1.1%로 낮췄으며 중국을 제외한 지역은 2.6%로 하향됐다. 특히 구리 가격이 높은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매수세도 약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맥쿼리는 AI 산업 확장이 구리 수요를 예상만큼 크게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데이터센터 확산이 구리 가격에 대한 강세 심리를 자극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대 여론과 전력망 제약, 장비 부족 등으로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광섬유 기반 통신망의 활용이 확대되면서 데이터센터가 실제 구리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시장의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고 맥쿼리는 분석했다.
이에 맥쿼리는 최근 가격 상승세와 거시경제 여건을 반영해 올해 구리 평균 가격 전망치를 기존 톤당 1만2310달러에서 1만3165달러로 상향 조정하면서도 현재의 급등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구리 가격이 조정을 거쳐 2027년 3분기 톤당 1만1000달러까지 내려가 저점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