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조달로 장애인 일자리 지키는 美 ‘어빌리티원’ [장애인, 일자리로 세상을 만나다⑦]

박상주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8.18 08:59

장애인에게 절실한, 최상의 복지는 결국 일자리다. 일은 생계를 넘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사회와 연결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일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찾았다. 지속 가능한 장애인 고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편집자주>


①출근, 세상에 내딛는 첫 발걸음 ②직장, 인생에서 얻은 유일한 배울 기회 ③가족, 직장인 아들…돌봄받다 돌봄으로 ④회사, 장애인과 일하는 이유…지속해야 할 이유 ⑤일터, 끊어진 일감 앞에 연이어 휴업 ⑥제도, 장애인 일자리 지탱할 우선구매 제도 '유명무실' ⑦외국, 우선구매 제도 철저…'살 품목'부터 정해 ⑧지금, 방치된 우선구매제도 개정안…숫자놀음 벗어난 개혁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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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젠스파크(Genspark) 및 챗지피티(ChatGPT)

한국은 공공기관 10곳 중 4곳이 중증장애인생산품 의무구매비율을 채우지 않고 있다. 법정 구매비율을 채우지 않아도 국가가 기관에 제재를 가할 수단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장애인 일자리를 공공조달과 어떻게 연결하고 있을까. <에너지경제신문>이 국내외 전문가 3명을 통해 미국 '어빌리티원'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을 살펴봤다.


구매목표는 의무, 이행은 선택…강제력 빠진 우선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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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환 대구대학교 명예교수겸 장애인재활센터 대표가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본사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 정원선 인턴기자

현행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제7조는 공공기관이 구매계획과 전년도 실적을 제출하도록 한다. 법정 구매목표도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중증장애인생산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만든 장치다. 현재 구매목표 비율은 총구매액의 1.1%다.



다만 목표에 미달했을 때 적용되는 조치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 제7조 제8항은 전년도 구매실적이 법정 비율에 미달하면 해당 공공기관장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목표 이행을 강제할 제재 수단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나운환 대구대학교 직업재활학과 명예교수 겸 한국장애인재활협회장은 “입법 이후에도 우선구매 목표율을 넘지 못하는 기관이 있지만 제재가 없다"며 “법에는 반드시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매 방식도 공공기관의 선택에 맡겨져 있다. 법 제7조 제4항은 중증장애인생산품을 분리해 발주할 수 있도록 한다. 제5항도 수의계약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두 조항 모두 '할 수 있다'고 명시할 뿐, 반드시 시행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실제 구매 방식은 공공기관의 선택에 맡겨지는 셈이다.


나 교수는 이런 구조에서는 우선구매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입찰해 싼 물건만 구매하면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우선구매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의 집행을 조정할 기구도 약화됐다. 기존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촉진위원회는 부처별 구매 품목과 계획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2024년 정부의 위원회 통폐합에 따라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로 통합됐다.


나 교수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의결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구이고, 장애 관련 부처 중심으로 참여하는 위원회"라며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위원회가 통폐합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매의무를 조달 절차에 담은 미국의 '어빌리티 원(Abilit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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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토레 히세니 시러큐스 대학교 법학과 조교수(Fitore Hyseni, Research Assistant Professor of College of Law)가 에너지경제신문과 비대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 정원선 인턴기자

피토레 히세니 미국 시러큐스대학교 법학과 조교수는 이 같은 비율 중심 방식이 수요 예측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약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제도는 이와 달리 구매 대상과 이행에 무게를 둔다. 반드시 구매해야 할 제품과 서비스를 미리 정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지정된 품목은 실제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히세니 교수는 “재비츠-와그너-오데이법에 따라 연방기관은 조달목록에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지정 비영리기관에서 구매해야 한다"며 “이러한 구조는 연방정부의 구매를 지정 비영리기관의 일감과 직접 연결해 장애인 일자리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조달규정(FAR·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제8.704조는 이러한 구매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조달목록(Procurement List)에 오른 제품과 서비스는 '의무공급원(Mandatory Source)'으로 지정된다. ​연방기관은 이를 지정된 장애인 고용 비영리기관에서 구매해야 한다. 이처럼 의무구매는 장애인 일자리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어빌리티원의 핵심 장치다.


어빌리티원은 1938년 제정된 와그너-오데이법(Wagner-O'Day Act)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에는 시각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을 연방정부가 구매하도록 했다. 1971년 법 개정을 통해 대상이 중증장애인까지 확대됐다. 장애인 고용 비영리기관이 연방정부에 제공할 수 있는 범위도 제품에서 서비스까지 넓어졌다. 명칭도 재비츠-와그너-오데이법(Javits-Wagner-O'Day Act)으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일반기업 제품이 더 저렴하거나 경쟁입찰이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공급업체를 바꿀 수 없다. 필요한 수량이나 납기를 맞추기 어렵거나 경제적인 생산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구매예외를 받아 일반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다. 이때도 예외가 적용되는 물량과 기간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프로그램의 경제적 효과도 확인됐다. 2023년 매서매티카의 '사회경제적 영향 분석 평가 보고서'(Socioeconomic Impact Analysis Evaluation Report)에 따르면 어빌리티원 프로그램은 운영비 1달러당 평균 2.66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 어빌리티원위원회가 현재 밝힌 프로그램 참여 장애인은 약 4만1000명이다.


정부수요를 장애인 일감으로 … 숨은 공신 '소스 아메리카'와 'NIB'

장애인 고용의 안정성을 높이는 또 다른 요인은 중개기관의 역할이다. 중앙 비영리기관인 소스아메리카(SourceAmerica)와 미국시각장애인산업단체(NIB·National Industries for the Blind)는 연방정부와 약 500개의 비영리기관 사이를 잇는다.


히세니 교수는 “두 기관이 계약이 진행되도록 연결하고, 계약을 협상하며, 기술지원을 제공한다"며 “비영리기관에 보조금이나 역량 강화 지원을 제공하고, 인력개발 기회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역할이 중증장애인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라고 짚었다.


소스아메리카는 약 500개 비영리기관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5만9400명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3만7400명 이상이 어빌리티원 계약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한다. NIB도 전국 약 100개 비영리기관과 연계돼 있다. 2024회계연도에는 NIB와 연계 기관에서 시각장애인 5142명을 고용했다. 새 일자리도 268개 만들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역할을 맡는 기관은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우선구매지원부는 중증장애인생산품의 계약을 대행하고 공공기관의 구매 실적을 관리한다. 생산시설의 판로 개척과 우선구매 마케팅도 지원한다.


다만 국내 전문가는 이 같은 기능을 지역 단위의 수요 조율과 물류·유통까지 넓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생산시설 대부분이 소규모기 때문에 생산뿐 아니라 계약과 보관, 배송까지 직접 맡기 어렵다는 이유다.


나운환 교수는 “소규모 사업장이 공공기관과 계약하고 물건을 보관해 직접 유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생산시설은 물건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별도의 체계가 계약과 보관, 납품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공공기관이 어떤 물건을 얼마나 살지 조율하고 물류와 유통, 계약 대행까지 맡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매실적보다 지속 가능한 일감…우선구매의 다음 과제

무엇보다 어빌리티원은 정부 수요를 새로운 장애인 일감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어빌리티원위원회는 연방정부가 구매하는 제품과 서비스 가운데 장애인 고용 비영리기관이 공급하기 적합한 품목을 찾아 조달목록에 추가한다. 소스아메리카와 NIB도 연방기관의 조달 수요와 비영리기관의 생산능력을 파악해 새로운 품목을 위원회에 제안한다. 그 결과 일감도 특정 품목에 머물지 않는다.


히세니 교수는 “어빌리티원 계약은 특정 분야에만 집중되지 않고 매우 폭넓게 구성돼 있다"며 “청소·시설관리, 식품, IT, 시설 운영, 제조, 창고 관리 등 다양한 계약과 일자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다양성은 장애인들이 서로 다른 숙련 수준에서 자신이 추구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경로나 최소한의 선택지를 만든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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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장애인인권센터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 정원선 인턴기자

서인환 장애인인권센터 이사장은 국내 우선구매 품목이 일부 전통적인 분야에 머무는 구조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 이사장은 “새로운 직종이 계속 나오고 노동시장이 바뀌는데 계속 복사용지나 화장지를 만드는 것으로 경쟁할 수 있느냐"며 “장애인 기업도 태양열 에너지나 컴퓨터 프로그램 등 여러 특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이사장은 건별 계약 중심의 구매 방식도 고용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오늘 납품했다고 다음에도 납품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새로운 수요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장애인 고용기관의 일감으로 연결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재와 함께 제도에 참여할 유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 이사장은 “법으로 강제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며 “했을 때 이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으로 이점을 줘야 자발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데, 강제만 하면 오히려 하지 않으려는 저항감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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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박상주 기자 입니다. 자본시장부 redphoto@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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