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방치된 옛 골프연습장 부지 개발에 주민 기대
“청년 주거 필요” 공급 취지 공감…공원·한강 조망 훼손 우려도
좁은 진입도로·고압선·토지보상 난제…2029년 착공 회의론
LH “아직 사업시행 예정자…세부 추진계획 설명은 시기상조”
▲18일 서울 강서구 염창공원 내 공공주택 사업 예정 부지에 화물차와 굴착기 등 각종 장비가 세워져 있다. 정부는 이 일대 5만1000㎡에 약 1000가구를 공급해 2029년 착공할 계획이다. 사진=장혜원 기자
8.13 주택 공급대책에서 서울에선 유일하게 신규 공급 부지로 공개된 서울 강서구 염창공원 일대가 1000가구 규모의 공공주택지구로 개발된다. 오랫동안 방치된 옛 골프연습장 부지가 정비된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공원과 산책로 훼손, 교통난, 기반시설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부 주민은 공공주택 공급 자체에는 동의하면서도 정부가 구체적인 주택 유형과 개발 범위를 정하기에 앞서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대·분양 비율과 입주 대상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1000가구 전부가 청년 임대주택으로 공급된다'는 인식이 먼저 퍼지면서 불필요한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8일 에너지경제신문이 염창공원 일대는 지하철 9호선 증미역에서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었다. 다만 증미역 방면에서 주택가로 접어들자 도로 폭이 급격히 좁아졌다. 승용차 두 대가 여유 있게 교행하기 어려운 구간도 있었고 도로 위로는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공원 인근에는 한강우성아파트를 비롯한 기존 아파트 단지와 저층 주거지, 소규모 상가가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길 끝에는 과거 골프연습장으로 사용됐던 대형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 시설은 다른 용도로 이용되는 모습이었지만 주변 유휴부지에는 화물차와 굴착기 등 각종 장비가 놓여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수풀도 곳곳에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정부는 지난 13일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을 통해 염창공원 일대를 신규 공공주택지구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사업 대상 면적은 11만1800㎡이며 이 가운데 5만1000㎡에 약 1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시행 예정자로 참여한다. 정부는 지구 지정과 지구계획 수립 절차를 통합·단축해 2029년 착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8일 서울 강서구 염창공원 공공주택 사업 예정 부지로 이어지는 좁은 2차선 도로. 주민들은 약 1000가구가 들어설 경우 차량 통행이 늘어 교통 혼잡이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장혜원 기자
“무범지대 같던 곳…방치하는 것보다 낫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 사이에서는 장기간 방치된 부지가 정비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염창동 주민 A씨는 “정부가 집을 짓는다고 발표해도 실제 완공될 때까지는 믿기 어렵다"면서도 “지금 부지 자체가 지저분하고 으슥해 비가 오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무범지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 방치해 두는 것보다는 주거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주민 B씨는 “서울 어느 지역이든 집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공공주택은 필요하다"며 “젊은 세대가 집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공공주택이 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공주택이 집값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지역 이기주의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B씨는 “결국 자기 동네에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며 “이곳에서도 무조건 반대한다면 다른 지역에 공공주택을 공급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염창공원 일대는 과거 민간공원 조성사업이 추진됐지만 수익시설과 주민 편의시설 조성을 둘러싼 문제, 사업시행자 지정 취소와 소송 등을 거치며 장기간 표류했다. 현장에서 만난 고령의 주민들도 골프연습장 조성 당시부터 각종 갈등이 이어졌다고 기억했다.
주민 C씨는 “골프연습장 사업이 추진되다가 법적 문제가 생기고 부도가 나면서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송도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정부와 LH가 추진한다고 하니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서구도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환영하고 있다. 강서구는 정부 발표 직후 “대표적인 난제로 꼽혔던 염창근린공원 훼손지 문제가 마침내 풀렸다"고 평가했다.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장기간 방치된 시설을 정비하고 공원 기능을 회복하는 동시에 주택 공급도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다.
“1000가구 들어오면 차량은 어디로"…교통난 걱정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기존 기반시설이 1000가구의 추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대부분 기존 아파트와 저층 주거지 사이를 통과하는 이면도로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현재도 출퇴근 시간대 차량 통행과 주차 문제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규 주택이 들어설 경우 수백 대의 차량이 추가로 유입될 수 있어 별도의 교통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민 D씨는 “이 일대는 도로를 넓히려고 해도 양쪽에 건물과 아파트가 있어 확장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버스도 공원 안쪽까지 들어오지 못하는데 1000가구를 지으면 차량이 어디로 드나들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재건축과 공공주택 개발 일정이 겹치면 교통 부담이 한꺼번에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염창공원 주변 우성1·2차와 삼천리 아파트는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단지 재건축과 염창공원 공공주택사업이 동시에 진행되면 공사 차량 통행부터 입주 이후 교통수요까지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18일 서울 강서구 염창근린공원 훼손지 인근 건물과 수목 사이로 고압 송전탑이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공공주택 개발 과정에서 송전탑 이설과 안전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현장에서는 고압 전력설비 문제도 거론됐다. 공원 인근에는 전주와 전선이 지나고 있으며 수목과 건물 사이로 대형 철탑 구조물도 확인됐다.
주민 E씨는 “고압선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파트를 짓기 어려울 것"이라며 “전력설비를 옮기거나 지중화하는 방안도 사업계획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실제 개발 대상지에 어떤 전력설비가 포함되는지와 이설이 필요한지 여부는 향후 지구계획 수립 및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도로 확충과 대중교통 대책, 학교·주차장 등 생활 기반시설 배치계획도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산책로와 한강 조망 지켜야"…공원 훼손에도 민감
염창공원과 염창산은 인근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산책·운동 공간이다. 산책로 안내판에는 염창산 둘레를 따라 여러 갈래 길과 체육시설이 표시돼 있었다. 공원 정상부에 오르면 수목 사이로 한강 일대도 내려다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개발 대상이 장기간 방치된 훼손지에 집중되는지, 산책로와 기존 녹지를 얼마나 보존하는지가 주민 수용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 F씨는 “1000가구면 단지 규모가 상당한데 현재 보이는 유휴공간만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공원과 한강 조망까지 망가뜨리면서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주민들이 이용하는 산책로와 운동시설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장기간 방치된 구역과 주민들이 실제 이용하는 공원 구역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훼손된 옛 골프연습장과 유휴부지를 정비하는 사업을 공원 전체를 없애는 개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민 G씨는 “오랫동안 출입하기 어려웠던 곳까지 모두 주민 휴식공간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사용하지 못하는 땅을 정비하고 녹지를 새롭게 조성한다면 오히려 주변 환경이 나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강서구 염창근린공원 인근 한강우성아파트와 어린이보호구역 모습. 정부는 염창근린공원 훼손지에 공공주택 1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으로, 주민들은 교통 혼잡과 통학 여건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공급 유형 미정…“주민 의견 실제 계획에 반영해야"
현장에서는 일부 주민이 '공공주택 1000가구'를 '청년 공공임대주택 1000가구'로 받아들이는 모습도 나타났다. 임대주택이 집중적으로 공급되면 인근 집값과 주거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공공주택지구의 위치와 전체 공급 규모, 사업시행 예정자, 착공 목표 등 기본 구상이다. 전체 1000가구의 임대·분양 비율과 주택 규모, 청년·신혼부부 등 구체적인 입주 대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급 유형이 확정되기 전에 임대주택 비중을 전제로 찬반이 갈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민 H씨는 “임대주택을 짓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사업을 한꺼번에 밀어붙여 나중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모든 주민의 요구를 반영할 수는 없더라도 형식적으로 의견만 듣는 데 그치지 말고 실제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창공원 사업이 2029년 첫 삽을 뜨려면 토지보상 등 후속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해당 부지는 여러 소유자에게 토지 지분이 나뉘고 소유권 변경도 이어지면서 장기간 정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공공주택지구 지정과 주민 의견 청취,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LH가 보상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보상 협의의 진행 속도가 정부가 제시한 2029년 착공 목표를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아울러 세부 사업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LH 관계자는 “LH는 현재 사업시행 예정자로 아직 실질적인 사업에 착수한 단계가 아니다"며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없어 현시점에서 세부 추진계획을 설명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