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수출입·기업銀 노조 중심 대규모 집결
지방 이전 중단, 주 4.5일제 도입 등 요구
금감원 노조, 대통령에 탄원서 제출
“금융경쟁력 약화, 소비자 접근성 저하”
직원 10명 중 8명 “지방 이전 시 이탈”
지방이전 계획 구체화에 금융권 반발 거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4일 서울 광화문역 주변에서 정부의 국책은행 지방 이전 추진 방침에 반대, 주4.5일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개최한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다시 속도를 내면서 금융권 노동계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국책은행 지방 이전에 반대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금융감독원 노동조합도 금융감독기구와 금융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재고해 달라는 탄원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금융권 핵심 기관의 이전 여부를 둘러싼 노정 갈등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 국책은행 이전 반발 확산...금융노조, 1만5000명 집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4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총파업 집회를 열고 국책은행 지방 이전 추진 중단을 비롯한 노동 현안 해결을 촉구했다. 금융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약 1년 만이다.
이날 집회에는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이른바 3대 국책은행 노조원을 중심으로 약 1만5000명이 모인 것으로 경찰은 비공식 추산했다. 참가자들은 붉은색 머리띠와 노란색 종이 모자 등을 착용하고 '지방이전 저지', '실질임금 인상쟁취', '주 4.5일제 도입'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금융노조는 국책은행 본사 이전 문제 외에도 주 4.5일제 도입과 청년 채용 확대, 정년 연장, 실질임금 보장, 제도 개선 등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본사 이전 과정에서 노조와 사전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요구안에 포함됐다.
양민호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집회에서 금융노조가 제시한 핵심 요구가 모두 6가지라며 근로시간 단축과 청년 고용 확대, 본사 이전에 대한 사전 합의, 정년 연장, 실질임금 보장, 제도 개선 등을 제시했다.
▲윤석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4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열린 총파업 집회에서 머리띠를 들어올리고 있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 노동자들이 높은 영업 실적 압박과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현실을 언급하며 근로시간을 줄이고 정년을 연장하는 한편 지방 이전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사전 공지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금융노조의 요구에 힘을 보탰다. 이날 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학영·이용우 의원과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용우 의원은 주 4.5일제 도입 요구에 지지 의사를 밝히며 조합원들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형동 의원은 금융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국회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융노조의 파업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노조는 지난달 12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6.05%의 찬성률을 기록하며 총파업을 확정했다. 같은 달 28일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파업 계획을 구체화했으며, 향후 노사 교섭 상황에 따라 추가 파업에 나설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 “금융중심지 기반 흔들린다"...금감원 노조도 반대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노조 역시 같은 날 금융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김상우 금감원 노조위원장은 금감원 내부 구성원 1720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금감원 노조는 금융감독원과 금융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길 경우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금융소비자 보호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 금융회사와 정책금융기관, 금융감독기구가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어야 정보 교류와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김상우 위원장은 “금감원과 금융 공공기관이 지방 이전할 경우 금융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소비자와 감독기관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벌어질 경우 피해 대응에도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노조는 특히 서울 여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 인프라가 지난 20여년간 금융중심지 정책과 함께 구축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금융 관련 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하면 기존 금융 생태계의 연결성이 약해질 수 있고, 여의도 금융중심지와 용산 업무지구를 연계해 글로벌 금융·비즈니스 거점을 만들겠다는 정책과도 충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력 유출 가능성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금감원 노조가 실시한 내부 설문조사에서 지방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만 40세 미만 직원 757명 가운데 609명(80.4%)이 이탈 의향을 나타냈다. 전문인력의 경우에도 변호사는 172명 중 147명(85.5%), 회계사는 361명 중 285명(78.9%), 석·박사 인력은 310명 중 203명(65.5%)이 이탈 의사를 밝혔다.
금융소비자와의 접근성 문제도 거론했다. 금감원 노조에 따르면 연간 금융 민원 80만여건 가운데 80% 이상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금감원을 직접 찾는 민원도 연간 3468건에 이른다. 기관이 지방으로 이동하면 소비자와 감독기관 사이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지방 이전 자체를 통한 균형발전보다는 지역 금융 활성화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역 재투자 평가 등에 인센티브를 확대해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지역 기여를 끌어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가 중앙행정기관 추가 이전 계획을 내놓으면서 금융권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전날 발표한 '2차 중앙행정기관 이전 추진 방향'에서 법무부와 성평등부 등을 내년 상반기 이전 대상으로 제시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발표에서 구체적인 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연내 후속 발표 과정에서 거론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와 금감원 노조를 중심으로 금융 관련 기관의 지방 이전에 대한 반발이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노동계가 반대 표명을 넘어 총파업과 탄원서 제출 등 실력 행사에 나선 만큼 정부의 이전 구상과 금융권의 대응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