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마진 100달러 시대…수출단가 반년 새 52%↑
7월 수출량 전년比 98.8%…정부 제한선 ‘턱밑’
수요 앞서는 공급…“잉여물량 수출 탄력화 필요”
▲국내 정유업계의 수출 여력이 정부 규제라는 '천장'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글로벌 디젤(경유) 공급난에 따른 고마진 환경 속에서 기계적 수출 통제라는 장벽을 만나 슈퍼사이클 탑승에 일부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사진=챗GPT
국내 정유업계의 수출 여력이 정부 규제라는 '천장'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글로벌 디젤(경유) 공급난에 따른 고마진 환경 속에서 기계적 수출 통제라는 장벽을 만나 슈퍼사이클 탑승에 일부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내수 수급 여건을 고려해 규제를 유연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글로벌 경유 크랙 스프레드(정제 마진)는 최근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러우전쟁 여파로 세계 2위 경유 공급국인 러시아의 정제설비 가동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가운데,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차질이 겹치며 구조적 공급부족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3일(현지시간) 남유럽 디젤 마진이 지난 1일 사상 최고 수준인 배럴당 104.08달러를 기록했고, 같은 날 북유럽도 99.66달러(배럴당)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디젤 정제마진 역시 지난 2일 기준 장중 108.02달러(배럴당)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두드리고 있다.
◇ 수출단가 50% 급등했지만...'규제 천장' 정유사 눈앞
글로벌 경유 공급난에 따른 가격 강세는 국산 제품의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수출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경유 수출단가는 중동전쟁 개전 초기인 지난 2월 배럴당 90.9달러에서 지난 7월 138.6달러로 반년 새 52.5% 급등했다. 7월 기준 수출액(배럴당)은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55.4% 뛰었다.
글로벌 수급 불균형은 국산 제품의 가격뿐만 아니라 수출 지형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일 유조선 프리아모스호가 한국산 경유 9만톤(t) 가량을 싣고 유럽으로 향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통상 국산 경유는 아시아·태평양 권역에서 수출된다는 점에서, 글로벌 수급불균형이 국내 정유업계의 시장을 확대하고 국산 제품의 몸값 역시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5년·2026년 경유 수출량 및 수출단가 추이. 그래픽=박주성 기자
문제는 이 같은 우호적인 시장 상황 속에서 지난 3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수출 규제로 인해 국내 정유업계의 경유 수출여력이 한계에 임박했다는 점이다.
페트로넷에 따르면, 한국의 경유 수출량은 제도 시행 이후 △1490만5000배럴(3월) △1262만7000배럴(4월) △1350만배럴(5월) △1508만2000배럴(6월) △1832만5000배럴(7월) 수준으로 집계됐다.
호르무즈해협 통항 차질로 역내 원유 수급이 빠듯했던 4~5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70~80% 수준으로 수출하는데 그쳤던 반면, 상대적으로 원유 수급이 안정화된 6~7월 들어선 전년 동월 대비 수출량이 수출 제한치 인근까지 도달했다. 특히 7월 수출량은 전년 동월 대비 98.8% 수준을 보여 당월 허용된 수출 쿼터를 사실상 대부분 소진했다.
앞서 산업통상부는 지난 3월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과 함께 휘발유·경유·등유 등 석유제품을 각 월별로 전년 대비 100% 이하로만 수출할 수 있도록 제한한 상태다.
◇ 내수 안정화 공감대…“'잉여 생산' 수출 확대 열어줘야"
수출시장 호황이 곧 규제 해소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중동전쟁 여파로 시장 내 원유 조달 불확실성이 잔존한만큼, 섣부른 규제 완화는 내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어서다. 정부 역시 이 같은 가능성을 우려해 수출규제 완화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관 산업부장관은 지난달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중동 위기가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민 생활과 산업 활동에 필수적인 석유제품의 국내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정부가 양보할 수 없는 책무"라며 수출규제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특히 김 장관은 “최고가격제로 국내 가격에 상한이 있는데 해외 가격이 크게 오르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해외시장으로 물량이 이동할 유인이 커진다"며 “수출관리는 기업의 수출을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비상시에 국내에 필요한 물량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업계는 이러한 제도 취지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정부가 수출규제 유연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부가 이른바 '매점매석 고시'를 통해 정유업계가 생산한 석유제품을 국내 시장에 우선 공급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만큼, 수출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업계의 국내 우선공급 기조는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3월 매월 정유사가 생산한 석유제품에 대해 전년 동월 대비 90% 이상을 국내에 반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석유제품 매점매석행위 금지 등에 관한 고시'를 시행한 바 있다.
업계는 또, 내수 석유제품 수요가 예년보다 부진한 점을 들어 수출 제한 상한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한다. 매점매석 고시에 따른 90% 국내 의무 반출 조건은 유지하되, 내수에서 소화되지 않는 잉여 생산량을 감안해 수출 제한을 탄력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트로넷 통계에 따르면, 실제 국내 경유 소비량은 지난 7월 기준 1288만3000배럴로 전년 동월 대비 1.3% 저조했다. 전체 석유제품 내수 수요 역시 7043만3000배럴로 같은 기간 17.2%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업계 역시 내수 우선 공급이 기본 원칙인 만큼 수출 제한이 완화된다고 해서 국내에 공급해야 할 물량을 수출로 돌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현재 국내에 물량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지만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정유사에 따라 내수에서 소화되지 않은 물량이 재고로 남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고가격제와 수출 제한이 장기간 이어진데다 최근에는 원유 수급도 안정되고 정유사들의 공장 가동 여건도 개선된 상황"이라며 “국내 공급 물량에 대한 조건은 그대로 유지하되 내수 수급이 안정적인 경우 잉여물량이나 추가 수출 여력이 있는 범위에서 수출 제한을 탄력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