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미디어 데이’…SDV 테스트베드·실제 도심 자율주행 영상 공개
40여대 데이터 수집차량 운영…1대당 매주 약 80시간 주행 데이터 확보
엔비디아와 투트랙…Atria AI 기반 레벨2++ 2029년 하반기 양산 목표
▲현대차그룹의 '아트리아AI'가 탑재된 SDV 테스트베드 차량. 사진=박서현 기자
자세히 보면 다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아이오닉 6 차량이지만, 투명한 운전석 창문 너머로 사람은 없다. 사이드미러 자리에는 거울 대신 카메라 화면이 달렸다. 스티어링휠 뒤편에는 방향지시등 레버도, 와이퍼를 조작하는 레버도 없이 그저 매끈하다. 번호판 아래로는 검은색 센서로 보이는 장치가 자리하고, 룸미러 앞에는 블랙박스라기엔 조금 큰 카메라 장치가 보인다. 차량 측면으로 다가가 A필러 쪽을 살피자, 그제야 '자율주행 연구를 위한 외부 촬영중'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눈에 들어온다.
주행영상에서도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은 없었다. 스티어링휠이 혼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복잡한 강남 한복판을 누볐다. 차들이 꽉 막힌 4차선 도로에서 차선 변경도 막힘 없었다. 현재 차선에 차량이 몰리면 옆차선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왔고, 직진하다가 옆차선 차가 가까이 붙으면 살짝 거리를 벌렸다. 양쪽에 주정차 차량이 일렬로 늘어선 비좁은 골목에서도 문제는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 앞에서는 재빠르게 멈췄고, 양방향 통로에서 큰 트럭이 다가와도 한쪽으로 비켜서며 천천히 간격을 유지했다. 운전자였다면 '너 진짜 운전 잘한다'라는 칭찬이 나올 법 했다.
지난 11일 현대자동차는 판교 포티투닷 본사에서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열고 아트리아AI가 탑재된 SDV 테스트베드 차량과 실제 자율주행 영상을 공개했다.
◇ “5년 내 경쟁사 데이터 추월"…자율주행 '데이터 플라이휠' 가동 나서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경쟁의 승부처로 꼽은 것은 결국 데이터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이를 얼마나 빠르게 AI 학습과 검증으로 연결하고 다시 차량에 적용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이다.
정성균 포티투닷 아트리아 GL은 “좋은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과 다양한 상황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데이터 수집부터 분석·학습·검증·배포를 반복하는 '데이터 플라이휠'을 설명했다.
현재 포티투닷은 40여대의 데이터 수집 차량을 주야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차량 한 대당 매주 약 80시간의 주행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에는 이면도로, 도로공사 구간, 악천후, 급격한 차선 변경 등 실제 도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엣지 케이스가 담긴다.
현대차그룹이 데이터 규모를 빠르게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배경에는 완성차 제조 역량이 있다. 정 GL은 “현대차그룹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의 공격적 양산을 시작하면 5년 이내에 경쟁사들이 그동안 누적한 데이터량을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도 이날 자율주행 시장을 두고 “더 이상 특정 기능의 우열을 가리는 경쟁이 아니다"라며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며, 그 결과를 얼마나 신속하게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에서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서현 기자
◇ “많이 모은다고 될 일 아냐"…AI가 어려워하는 데이터만 골라낸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데이터 플라이휠에서 강조한 것은 '양'만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데이터 플라이휠의 핵심 요소로 규모·품질·효율·운영을 꼽았다. 데이터 플라이휠은 네 요소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해지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어느 하나라도 0에 가까워지면 나머지가 아무리 커도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주행 데이터에는 반복적인 상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정 GL은 직진 차로를 정속 주행하는 데이터가 전체 수집 데이터의 절반 이상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율주행 성능을 높이려면 AI가 어려워하는 엣지 케이스를 찾아내 집중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하드 이그잼플 마이닝(Hard Example Mining)'을 활용한다. AI 모델이 판단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을 자동으로 선별해 학습에 우선 반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실제 주행과 검증 과정에서 새롭게 확보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학습시키는 '컨티뉴어스 트레이닝(Continuous Training)'을 결합한다.
가상 검증도 병행한다. 실제 주행 데이터를 3차원 환경으로 재구성한 뒤 실제 도로에서 반복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 검증하는 방식이다. 실제 주행 데이터를 가상공간에 재현해 다양한 엣지 케이스를 반복 검증하고, 새로운 학습 결과가 기존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는지도 계속 확인한다.
◇ “성공해도 실패해도 기록한다"…AI가 스스로 약점 찾는 SER
데이터 확보 방식도 진화시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중 발생하는 중요 상황을 기록하는 스페셜 이벤트 리코더(SER)를 개발했다. 운전자가 직접 기록을 요청하는 경우뿐 아니라 급가속·급제동이나 불안정한 차간거리 같은 특정 상황을 시스템이 감지했을 때, 혹은 운전자나 시스템이 자율주행을 해제했을 때 관련 데이터를 자동으로 저장한다.
SER은 이벤트 발생 전후 각 15초의 데이터를 기록한다. 차량 센서 데이터뿐 아니라 차량 내부 신호와 Atria AI의 중간 처리 결과까지 함께 저장하고, 무선 통신을 통해 서버로 전송한 뒤 이슈 분석과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가공과 어노테이션까지 자동화한다.
자율주행이 성공한 경우에도 데이터를 남긴다. 차선 변경 자체에는 성공했더라도 운전자가 '위화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다면 해당 장면을 다시 분석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활용한다.
앞으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AI가 스스로 자신의 취약점을 찾아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능도 검토할 계획이다. 사람이 일일이 “이 상황을 학습해"라고 지정하지 않아도 Atria AI가 자신의 인지·판단 과정을 모니터링해 취약하다고 판단한 상황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아트리아AI'가 탑재된 SDV 테스트베드 차량의 실제 주행 영상. 영상=현대차그룹
◇ 엔비디아로 먼저 양산하고 Atria AI로 내재화…2028~2029년 승부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전략은 '투 트랙'이다. 검증된 외부 기술을 활용해 양산 시점을 앞당기는 동시에 자체 AI를 개발해 장기적으로 핵심 기술을 내재화한다.
첫 번째 트랙은 엔비디아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의 차량용 AI 컴퓨팅 플랫폼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기존 SDV 차량 아키텍처에 통합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8년 상반기 엔비디아 솔루션 기반 레벨2+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한 첫 SDV 양산차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특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 센서 체계 표준화다. 현재 현대차·기아와 포티투닷, 모셔널은 서로 다른 센서와 개발 이력을 갖고 있어 차량마다 수집되는 데이터의 형태가 다르다. 센서 구성을 일정한 기준으로 맞추면 서로 다른 차량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 10'을 중심으로 센서 체계를 단계적으로 표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룹 내 차량에서 확보되는 데이터를 일관된 형태로 축적·활용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같은 센서 생태계를 사용하는 외부 파트너의 데이터까지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두 번째 트랙은 포티투닷과 현대차·기아 AVP본부가 공동 개발하는 Atria AI다. 포티투닷이 핵심 AI 모델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AVP본부는 실제 양산차에 필요한 안정성과 품질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 조직은 개발 환경과 업무 프로세스를 통합해 사실상 하나의 팀처럼 하나의 주행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9년 하반기 Atria AI 기반 레벨2++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양산차에서 확보한 실차 데이터를 다시 학습에 활용해 자율주행 기술을 레벨4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 Atria AI 다음은 VLA…자율주행 넘어 'Physical AI'로
현대차그룹이 바라보는 자율주행의 최종 지향점은 차량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날 포티투닷은 VLA(Vision-Language-Action) 기반 차세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도 착수했다고 밝혔다.
VLA는 시각 정보와 언어 기반 추론을 차량의 행동 생성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기존 E2E 방식이 센서 입력을 차량의 행동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면, VLA는 언어 기반 추론을 더해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포티투닷은 현재 시뮬레이션을 통해 VLA 모델을 검증하고 있으며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실차 테스트를 포함한 전체 개발 프로세스를 가동할 예정이다.
박민우 사장은 이날 “자동차 산업이 AI 산업으로 재편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며 “소프트웨어와 AI를 직접 개발하는 역량과 글로벌 차량 규모로 이를 구현하는 역량을 결합해 차별화된 자율주행 경쟁력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기술을 실제 도로에서 검증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연말부터 국토교통부와 함께 광주에서 Atria AI 기반 SDV 페이스카를 활용해 레벨4 기술 요소를 실차에서 검증하고, 여기서 확보한 다양한 주행 시나리오와 돌발 상황 데이터를 다시 데이터 플라이휠에 투입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