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피로감 속 불편함을 찾아 나선 대학생들
“특유의 거칠고 따뜻한 입자감 좋아” 현상소 맡겨
초점 맞추고 셔터 누른 물리적 노력, 온전한 실물로
에너지경제신문은 강원대학교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허만섭 교수와 함께 연중기획으로 '청년공감' 코너를 운영합니다. 대학생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느끼고 겪은 다양한 '시대공감'을 청년의 시각과 글로 담아내겠습니다. <편집자주>
▲청년 아날로그 사진가의 하루. 이미지=챗 gpt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서 모 씨(여·23)는 코딩 과제를 할 때 챗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부친이 쓰던 낡은 수동 필름 카메라를 챙겨 서울 올림픽공원으로 외출했다. 서 씨는 “평일에는 전공 특성상 하루 종일 모니터를 봐야 해 피로한데, 주말에는 뷰파인더로 직접 초점을 맞추는 아날로그 취미로 쉬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20대 사이에서 학업이나 일상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쓰면서 여가에는 굳이 아날로그 방식을 찾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강원대 원주캠퍼스 교정에서 만난 대학생 최모 씨(여·21)는 고성능 스마트폰 대신 수동 필름 카메라인 '미놀타 X-700'으로 풍경을 찍고 있었다. 최 씨는 “최신 스마트폰은 화질이 너무 좋아 사진이 차갑게 느껴진다"며 “필름 특유의 거칠고 따뜻한 입자감이 좋아 현상소에 필름을 맡겨 스캔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도 기꺼이 감수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 모 씨(24)는 주말마다 무거운 수동 카메라를 챙겨 동호회 출사를 나간다. 정 씨는 “필름은 한 통에 36장밖에 못 찍어 셔터를 누르기 전 신중해진다"며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는 기다림 자체가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필름값 인상으로 학생 신분에 비용 부담이 큼에도 이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현상소를 직접 찾아가며 위안을 얻는 이들도 있다. 서울 노량진에서 자취하는 취업 준비생 배 모 씨(26)는 한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현상소를 찾는다. 배 씨는 “택배나 온라인 전송으로 편하게 결과물을 받아볼 수도 있지만, 현상소 문을 열고 들어가 필름을 맡긴 뒤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특유의 설렘과 기대감 때문에 일부러 발걸음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 준비는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 막막하고 힘든데, 사진은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른 물리적인 노력만큼 온전한 실물로 인화되어 돌아온다는 점에서 큰 위로가 된다"고 밝혔다.
▲(왼쪽) 1억 화소의 최신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오른쪽)수동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같은 장소. 사진=윤이레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 세상에 공유하려는 목적도 크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차 모 씨(여·21)는 필름 사진을 스캔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차 씨는 “스마트폰 앱 필터와 실제 필름의 색감은 확실히 다르다"며 “친구들도 일반 스마트폰 사진보다 필름 사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아날로그 회귀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4.8%가 '필름 카메라 구입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 리포트 월드에 따르면 전 세계 활성 필름 카메라 사용자 4200만 명 중 35%가 청년층(18~30세)이며, 이들의 수요에 힘입어 전 세계 35mm 필름 판매량이 최근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장인 정 모 씨(35)는 관련 논문을 인용해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한 20대에게 아날로그는 낡은 과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문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20대들이 무조건 아날로그만 쫓는 것이 아니라, 효율이 필요할 땐 디지털을, 감성이 필요할 땐 아날로그를 선택하는 똑똑한 소비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현상소 앞에서 만난 대학생 김 모 씨(23)는 “필름 카메라는 한 번 찍으면 끝이라 그 순간의 분위기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된다"며 “초점이 나간 사진도 결국 내 흔적이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주말에 필름 한 통을 비우며 평일의 디지털 피로감을 날려 보낸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손에 잡히는 필름 한 통과 인화지는 20대에게 작지만 확실한 위안이 되고 있다. 결국 이들에게 아날로그는 과거로의 도망이 아닌,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느림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생존 방식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