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차 최고가격 ‘동결’…6월 ‘7차가격’ 3개월 째 지속
글로벌 가격 급상승…경유 72%·휘발유 45.6%↑
학계선 ‘정치논리’ 비판…정부 수요관리 필요 지적도
▲18일 서울 시내 주유소에 유가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고가격제' 적용을 받고 있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의 가격 상한선이 3개월 째 동결됐다. 국제가격과 내수가격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국내 정유업계와 정부의 부담이 불어나는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한시적 비상경제조치로써 해제 내지는 인상 국면에 들어서야 할 최고가격제가 정치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글로벌 석유제품 가격 치솟는데…정부는 3개월 째 '동결'
18일 산업통상부는 19일 오전 12시부터 향후 4주간 적용될 10차 석유 최고가격을 기존 9차 최고가격인 휘발유 1784원·경유 1773원·등유 1380원(각 리터당)으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 26일께 시행된 7차 최고가격이 3개월 이상 유지되는 셈이다.
국제유가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서민 물가부담과 최고가 지정 동향, 환율 하락 추세 등을 종합 고려한 결과 민생 안정에 무게를 두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게 산업부 측 설명이다.
문제는 국제가격과 내수가격의 간극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싱가포르 석유제품 도매시장에서 휘발유(옥탄가 92RON) 가격은 지난 17일 기준 배럴당 143.48달러를 기록했다. 7차 최고가격 시행일(6월 26일) 당시 가격(배럴당 98.5달러) 대비 45.6% 증가한 수치다.
마찬가지로 최고가격제 통제에 놓인 등유와 경유의 가격 상승세는 훨씬 가파르다. 등유 가격은 같은 기간 180.92달러를 기록해 64% 뛰었고, 경유(황함량 0.001%)는 이 기간 191.95달러로 72% 치솟았다. 국제가격 급등세에도 불구하고 상한선 제약이 있는 내수가격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며 양자간 격차가 크게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국제가격과 내수가격의 격차 확대는 국내 정유업계는 물론, 정부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유사의 경우, 비싼 가격으로 도입해 생산한 석유제품을 최고가격제에 따라 통제된 가격 이내에서 판매해 기대수익보다 손실을 보게 된다. 손실분을 정부가 보전해 준다지만 올 1~2분기 손실분조차 정산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경영상 불확실성으로 잔존하는 구조다.
정유업계 손실을 보전해줘야 하는 정부도 부담이다. 정부가 올해 누적된 정유업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확보한 예산은 약 5조70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4분기 손실분 보전 명목 예산은 1조5000억원으로, 전체 규모의 26.3% 수준이다.
보전해야 할 손실 규모가 예산으로 충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면 정부는 추가경정(추경)을 통해 예산을 추가 확보해야 할 수 있다. 정유업계는 손실 규모가 이미 5조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경제 조치를 정치논리로 운영…정부, 수요관리 나서야"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구조 속 정부가 이번 10차 최고가격의 인상이 아닌 동결을 택하면서, 전문가들은 한시적 비상 경제조치인 최고가격제를 운용하는 정부가 정치적 논리에 기반한 결단을 내렸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본지에 “최고가격제는 본격적으로 폐지 수순을 밟아야 할 상황이고, 그러려면 단계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면서 국제유가에 맞춰야 한다"며 “그런데 최근 대통령이 '걱정하지 말라'고 공언하면서 산업부가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자신의 X(구 트위터)를 통해 “원유와 국제 정제유가는 폭등 중이지만, 국내 정제유는 최고가격제와 수출물량 통제로 무리없이 안정적 가격과 공급물량을 유지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유가에 관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덕환 교수는 “최고가격제는 시장을 마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정책"이라며 “지금이라도 정유사 손실을 온전히 보전하고 최고가격제를 종료한 뒤 업계의 자발적 상생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 최고가격제는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측면이 있다"며 “특히 추석이 바로 다음 주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국제 여건에 맞춰 최고가격을 인상하기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원유·석유제품 수급 여건이 구조적 공급부족 구도로 빠르게 기울고 있는 만큼, 정부의 선제조치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양 교수는 “원유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글로벌 여건 상 석유제품 가격은 쉽게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정치적 논리로 최고가격제가 운영되다보니 내수가격 제한으로 시장 신호에 둔감해지면서 소비자들이 휘발유 등 석유제품 소비를 줄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염려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는 다소 안정적인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내수 수급 불균형이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글로벌 시장의 가격 변동성이 심해질 수록 현재 한 달 간격의 가격 변경 주기를 다시 2주 간격으로 좁히는 등의 조치가 필요한데, 정부에 그런 의사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정부는 일단 이번 10차 최고가격을 향후 4주간 적용하되 대내외 여건을 고려해 조정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중동정세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통한 민생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국제유가 변동과 국내 석유 소비 추이 등을 면밀히 살펴보겠다"며 “유연하면서 신중하게 최고가격제를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