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도-정점식, 협상 정치 실종… 존재감 희미해져
협상의 진수 보여줬던 김무성-박지원, 이완구-박영선
정치 복원 위해서는 거대 여당의 태도 변화 선행돼야
▲정점식(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여야 극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협상의 정치를 복원해야 할 여야 원내사령탑의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강대강 대치 속에서 여야 원내사령탑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있다. 협상의 정치를 복원해야 할 원내대표들이 강경파의 그늘에 가려 소극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다수제로 변질된 국회가 대화와 타협의 합의제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여야의 첨예한 대치 전선 속에서 과거 원내사령탑들이 보여줬던 정국 주도권이나 타협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김무성-박지원, 이완구-박영선 체제처럼 싸울 때는 치열하게 부딪히더라도 물밑에서는 극적인 타협점을 찾아내던 협상의 정치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2010년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김무성 전 원내대표와 야당인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맞붙었던 정국은 여야 대치 속에서도 “형님", “동생" 하는 두 사람의 끈끈한 호흡이 정국을 지탱했다. 당시 세종시 수정안 갈등과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특검 등 살얼음판 같은 현안이 산적해 있었지만, 두 사람은 물밑에서 타협점을 찾아내 굵직한 사안을 매듭짓는 협상의 진수를 보여줬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여당인 새누리당 이완구 전 원내대표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마주 앉은 정국도 대한민국 국회 역사상 가장 풀기 힘든 난제 중 하나였다. 당시 양측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 부여 여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며 수차례 결렬과 재협상을 거듭했다. 두 사람은 협상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는 극한의 진통을 겪으면서도 합의안을 도출해내려 안간힘을 썼고, 비록 진통은 컸으나 접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실종된 협상 정치와 대조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8월 10일 오후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김대중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민주당 박지원(왼쪽)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8월 19일 새누리당 이완구(오른쪽)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등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병도 원내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도 협상의 정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두 원내대표도 정기적으로 식사를 함께하며 소통의 채널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고 한다. 두 원내대표는 지난 7월 21일 선거관리위원회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따른 특검법안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같은 협상이나 극적인 타협안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당내 강경파와 강성 지지층의 거센 입김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경파·지지층 반발에 무력해지는 원내사령탑들
여야 원내대표실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김무성-박지원, 이완구-박영선 시절만 해도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며 “이제는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을 하면 강성 지지층한테 욕을 먹는 구조가 돼버렸다"고 한탄했다.
이 관계자는 대표적인 사례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체제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병기 무소속 의원과 국민의힘 송언석 전 원내대표가 3대 특검법(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에 합의했던 국면을 꼽았다.
당시 여야 원내대표는 마라톤 협상 끝에 특검 파견 검사 증원 폭을 줄이고, 수사 기간은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후 민주당 내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일었고, 정청래 당시 대표는 이튿날 합의안을 뒤엎었다. 이 사건은 원내지도부가 고심 끝에 타협점을 만들어내더라도 당내 강경파와 지지층의 반발 앞에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민주당이 법안 단독 통과 않으면 협상 가능"
그럼에도 한 원내대표와 정 원내대표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정치의 본령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실종된 협상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거대 여당의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법안들을 단독으로 통과시키지 않으면 어떻게든 협상이 될 것"이라며 “국회는 본래 합의제 원리로 운영돼야 하는데 지금은 다수제로 운영되고 있다. 협상의 정치가 되살아나려면 민주주의의 본래 가치에 충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