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한전 전력망 25조 선납, 깔세인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10.01 10:00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얼마전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앞으로 5년 치 전기요금 총 25조원을 미리 받아 전력망을 건설하려 했던 사안을 다시 되짚어보자. 사실 본 사안의 핵심은 사실 돈의 규모나 업황의 문제이기 전에 '권리'의 문제다. 돈은 대라면서 망에 대한 권리 (재산권)는 주지 않기에, 애초에 받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부채에 허덕이는 (주)한국전력 입장에선 전력망을 제때 깔아보려고 짜낸 고육지책이란건 안다. 하지만, 전력망의 소유권과 운영권은 전혀 포기 않으면서, 수십조원의 자금조달 위험과 건설 부담은 통째로 민간에 넘기겠다는 시도이다. '민영화'라는 말이 나올 틈은 원천 봉쇄해 두고 돈만 끌어오겠다는 건데, 경제학적으로 당연히 유인 불합치(incentive incompatibility)가 발생하게 된다.


왜 선납은 기형적인가. 정상적인 인프라 투자를 떠올려 보자. 투자자가 돈을 대면 그 대가로 무언가가 남아야 한다. 재무제표에 자산(asset)이 잡히고, 감가상각이 되고, 장기 운영권이나 배당·리스료 같은 수익 흐름이 따라온다. 반면 선납은 어떤가. 25조원을 넣어도 장부에는 '선급금'이라는 채권 한 줄이 남을 뿐이다. 송전탑 한 기, 변전소 한 곳도 내 것이 아니다. 자본은 잔뜩 묶이는데 생산적 자산은 커녕 경비처리 하나도 못하는 구조다.



부동산 거래에서 속칭 '깔세'라고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선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걸 투자라 부르긴 어렵다. 깔세 세입자는 흔히 계약 상 매우 열등한 위치인 경우가 많으며, 여튼 뭔가가 아쉬워서 담보 없이 집주인에 목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자를 쳐주지 않았느냐고? 국고채 2년물보다 조금 높은 금리를 얹어 반기마다 요금에서 깎아 주겠다는 조건이 붙긴 했다. 하지만 그 이자로 무엇을 담보받는가. 지자체 인허가가 막히고 주민 반발로 공기가 밀려도, 전력이 제때 들어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권리는 제로에 가깝고 위험은 사실상 무한대인 비대칭 계약이다. 반도체 경기의 사이클과 글로벌 설비투자 경쟁을 감안하면, 이런 계약에 도장을 찍는 경영진은 주주 앞에서 배임 시비를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전과 정부는 왜 BTO(수익형)나 BTL(임대형) 같은 정통 민자 방식을 놔두고 이런 우회로를 찾았을까. 답은 뻔하다. '전력망 민영화'라는 프레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노조가 이 네 글자를 꺼내는 순간 논의는 산으로 간다. 그래서 망 소유권은 성역으로 남겨두고 돈만 끌어올 궁리를 한 것이다.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전력망 특별법 개정안도 같은 뿌리다. 민간이 송전망을 짓되 준공과 동시에 소유권을 한전에 넘기고, 투자 원금과 약정 수익을 나중에 정산받는 BT(Build-Transfer) 방식이다. 정부 스스로 “민간은 정산만 받을 뿐 운영권은 없다"고 못 박았다. 건설 위험은 지고, 자산은 못 갖고, 돈은 나중에 받는다. 과연 연기금이든 인프라펀드든 대형 외국계 자본이든, 소유도 운영도 없는 사업에 대규모 자본을 장기간 묶어둘까 싶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자본이 흐르게 하려면 정당한 반대급부, 곧 재산권(property rights)을 제도로 인정하면 된다.


첫째, BTL 방식의 도입이다. 민간이 망을 짓고 소유하되, 한전이나 정부가 이를 장기 임차해 확정된 시설임대료를 지급하는 구조다. 운영과 급전은 지금처럼 한전이 맡는다. 민간에는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이 생기고, 그 현금흐름이 자산으로 잡히니 금융투자자(FI)가 붙게 된다. 학교와 군 관사, 하수관거를 이미 이 방식으로 지어 왔다. 유독 전선만 안 될 이유가 없다.


둘째, 대형 첨단 산단에 한해 발전소와 공장을 잇는 전용 사설 송전망의 민간 소유와 직접 급전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전국 계통을 쪼개자는 게 아니다. 수용가가 제 돈으로 짓고 제 책임으로 관리하는 “전용선"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반도체 단지 하나 때문에 나라 전력망 전체가흔들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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