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현재 1107가구 중 947가구 이주”…망루 철거 인명피해 없어
주민마다 다른 이주 요구…재정착 임대주택 입주 자격은 공급 때 결정
1월 화재 뒤 소방도로 개설·빈집 전선 차단…남은 집 안전은 현재진행형
▲▲ 9월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 지난달 18일 철거된 망루는 보이지 않고, 마을 안쪽 길목에 주민단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에너지경제신문이 직접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에는 망루가 없었다. 2024년 11월 세워졌던 철제 구조물은 열흘 전 철거됐다. 그 자리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주민단체의 요구를 적은 현수막과 자진 이주 기간·명도소송 진행을 알리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망루를 둘러싼 충돌은 일단 끝났지만, 마을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1일 에너지경제신문이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 확인한 결과, 구룡마을 기존 거주 1107가구 가운데 947가구가 이주했고 160가구가 남았다. 이주율은 85.5%다. 지난 7일 공개된 수치와 같아, 적어도 SH의 두 집계 사이에 남은 가구 수는 줄지 않았다.
망루 하나가 사라지는 데는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40년 넘게 형성된 마을에서 마지막 160가구의 이주 조건을 맞추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철거는 끝났다…주민들의 생각은 같지 않았다
SH에 따르면 공사는 망루와 비닐천막 등이 점유한 토지에 대해 인도소송을 제기해 토지인도 판결을 받았다. 지난 18일 법원 집행관의 절차에 따라 해당 토지를 인도받았고, 차량 통제 등 현장 질서 유지 조치도 했다. SH는 이 과정에서 인명이나 시설 피해가 없었다고 밝혔다.
28일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망루 철거를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망루를 처음부터 세우지 말라고 했다며, 설치가 주민 전체의 동의를 받은 일은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다. 구조물이 위험하니 철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마을 밖에서는 망루가 주민 모두의 저항을 상징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민에게 망루는 자신의 뜻으로 세운 시설물이 아니었다. 그의 의견 또한 마을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망루 설치를 주도한 단체 관계자는 이날 현장에서 만나지 못했다.
설치 측의 이유는 당시 보도에 남아 있다. 2024년 11월 망루 농성에 들어간 구룡마을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 측은 강남구에 거주사실확인서 발급을, SH에는 주민에 대한 토지 매각을 요구했다. 토지를 사들여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집을 짓겠다는 구상이었다.
철거 당일인 지난 18일에도 유귀범 당시 추진위원장은 YTN에 주민들이 토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협의해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28일 만난 주민의 설치 반대 의견에 대해 단체 측이 현재 어떻게 답하는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SH는 철거 이후에도 미이주 주민에게 임시이주 지원제도를 계속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철거 뒤 새로 열린 주민단체와의 면담 날짜나 논의 내용, 합의 여부는 이번 답변에서 제시하지 않았다. 망루가 있던 땅을 돌려받은 것과 주민 간 이견을 좁히는 것은 별개의 일로 남아 있다.
▲▲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안쪽 도로에 주민단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망루 철거 이후에도 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이 남아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개발의 뒤편에서 시작된 마을, '돌아올 집'의 뜻도 달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디지털강남문화대전에 따르면 구룡마을은 1983년 개포동 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주민들이 구룡산 북쪽 자락에 자리 잡으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영농 비닐하우스가 들어섰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무허가 집단거주지로 커졌다. 길 건너 개포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동안 다른 쪽 산자락에는 구룡마을이 만들어졌다.
개발계획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2016년에는 2018년 착공해 2020년까지 사업을 마친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서울시가 심의한 변경 계획의 전체 공급 규모는 3739가구다. 올해 7월에는 그중 M·B2블록 2120가구의 공공주택 건설 계획이 조건부로 가결됐다. 서울시가 이 두 블록에 제시한 목표는 2027년 착공, 2031년 준공이다.
새집의 숫자가 정해져도 주민이 어떤 조건으로 떠나고 돌아올지는 남는다. SH는 현재 미이주 주민들이 분양아파트나 분양전환 임대아파트 공급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관련법상 인정되지 않는 요구라고 파악했다. 망루 설치 측이 제시한 토지 매입과 지역주택조합 구상도 SH의 공영개발 방식과 다르다.
SH는 임시 이주주택으로 행복주택·국민임대·매입임대 등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대보증금은 면제하고 임대료는 60% 감면한다.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임대료를 전액 감면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주민이 요구하는 것은 임시 거처의 임대료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곳에 새 주택이 들어선 뒤 어떤 자격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는 문제다.
개발계획에는 기존 거주민의 재정착을 위한 통합공공임대주택 1107가구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SH는 이번 질의에 “입주 자격 및 절차 등은 공급 시기에 정해질 예정"이라며 지금은 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1107가구를 짓는다는 계획과 기존 거주 가구 각각의 입주 조건이 확정됐다는 뜻은 다르다.
SH는 미이주 가구를 대상으로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며, 판결 전에 자진 이주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소송 대상 가구 수와 사건별 진행 단계는 밝히지 않았다. 이미 떠난 주민에게는 새집을 기다리는 시간이, 남은 주민에게는 지금의 조건으로 떠날지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한 건물 앞에 가스통 여러 개가 놓여 있다. 건물 외벽에는 강남구청의 생활실 철수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새집이 오기 전, 남은 집의 안전은 누가 지키나
구룡마을에서 시간은 주택 공급 일정만으로 흐르지 않는다. 올해 1월 4·6지구에서는 큰불이 나 18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본 좁은 골목과 천막·판재를 덧댄 건물은 새 단지가 들어서기 전까지 주민들이 생활해야 하는 현재의 공간이었다.
SH는 화재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소방도로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폐쇄되지 않은 빈집은 다시 폐쇄하고, 전기 합선에 따른 화재를 막기 위해 빈집에 연결된 전선도 차단했다고 했다. 화재 피해 주민에게는 기존 임시이주주택과 긴급 임시사용 주택을 공급했다는 설명이다.
강남구도 남아 있는 주민들의 화재·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현장 관리에 나서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SH와 매주 합동 순찰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일 1회 이상 상시 순찰을 통해 소방시설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명절이나 겨울철 등 재난 취약 시기에는 별도의 사전 점검도 실시한다. 강남구는 지난 2월 10~12일 설 연휴에 대비해 소방시설을 점검했으며, 점검 결과 정비가 필요한 곳에는 소화기를 보충하거나 전신주를 정비하는 등 안전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강남구는 10월 중 전기·가스 분야 전문가와 함께 구룡마을의 전기·가스 안전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점검 과정에서 누전차단기나 가스 타이머 등 교체가 필요한 시설이 확인되면 구가 직접 교체하기로 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주민 안전을 위해 안전점검과 현장 순찰을 통해 취약요인을 정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도시개발사업 시행 이후 거주 가구 현황과 이주대책 등 사업 전반은 시행자인 SH가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지와 물건의 소유권도 지난해 8월 SH로 이전됐다는 게 구의 설명이다.
지난 1월 화재 피해 주민에 대한 이주 지원 역시 SH가 맡고 있다. SH는 화재로 집을 잃은 주민에게도 사업 준공 때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임시이주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강남구는 지난달 18일 망루 철거와 관련해서도 SH가 토지인도 판결을 토대로 집행 권한을 확보해 법원 집행관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는 집행 과정에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현장 상황을 확인했으며, 시설 피해나 주민 민원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SH는 2027년 착공과 2031년 준공 목표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이주와 소송이 일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구룡마을은 개포동 개발의 뒤편에서 시작됐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망루는 철거됐고 새 주택의 공급 계획도 나왔다. 그러나 '돌아올 집'의 조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160가구는 오늘도 마을에 산다. 철거와 개발의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는 그날까지 안전하게 살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