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근속 15.4년…설계·공정·수율·패키징 인력 고루 포진
27명 중 26명 이미 퇴사…화웨이·SMIC 등으로 ‘연쇄 유출’
연봉 최대 2배·주택·자녀 교육비 제시…링크드인 통해 포섭
美 CXMT 제재, 韓은 “단속 근거 없다”…유출 방지 예산 0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고연차 기술인력 최소 27명이 중국 CXMT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1인당 평균 경력은 15.4년이다. 그래픽=김하나 기자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CXMT)로 이직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핵심 기술인력이 최소 2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인재 확보 대상이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이어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양산 인력으로까지 넓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평균 15.4년 베테랑 27명, 팹 통째로 넘어갔다…26명은 이미 퇴사
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 링크드인 등을 통해 CXMT 내 국내 인력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고연차 기술인력 최소 27명이 CXMT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출신별로는 삼성전자 23명, SK하이닉스 8명이다. 두 회사를 모두 거친 인력이 4명이다. 의원실은 앞서 국정감사에서 중국 '천인계획'의 KAIST 교수 149명 포섭 시도 정황과 출연연 연구원 포섭 시도를 공개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그 후속이다.
이들의 국내 대기업 근속 연수를 합하면 415.9년으로, 1인당 평균 15.4년에 이른다. 20년 넘게 양산 현장을 이끈 수석·임원급(PL)도 6명 포함됐다.
경력만큼 눈에 띄는 것은 직무 구성이다. 가장 많은 8명은 회로설계·레이아웃 인력으로, D램 셀·코어와 I/O 회로, HBM 설계를 맡았다. 1x D램 소자 개발과 라인 표준화를 담당한 공정통합 인력은 7명이었다. 식각·CVD·확산·메탈 공정 장비를 다루는 단위공정 인력과 인라인 계측, TCAD·TEM 기반 불량분석을 맡은 수율·결함분석 인력은 각각 4명이었다. HBM용 웨이퍼레벨패키징(WLP)과 실리콘관통전극(TSV) 공정을 설계하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인력 2명도 있었다. 클린룸 레이아웃과 제조자동화(CIM) 인프라 구축을 맡은 팹 기획 인력도 1명 포함됐다.
설계부터 공정, 수율, 패키징, 공장 인프라까지 반도체 공장 하나를 돌리는 데 필요한 직무가 고루 갖춰진 셈이다. 의원실이 이를 단순한 개별 이직이 아니라 공장을 통째로 옮긴 것과 같은 '턴키(Turn-key)'형 이동으로 보는 이유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인력 일부는 중간 기착지를 거쳐 중국 CXMT로 이동했으며, CXMT 퇴사자 26명 중 7명은 화웨이·SMIC 등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다시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CXMT 평균 체류 기간은 2.9년이다. 그래픽=김하나 기자
최근에는 범용(레거시) D램을 넘어 HBM 설계와 TSV 패키징 인력까지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이 CXMT에 머문 기간은 평균 2.9년에 그쳤다. 27명 중 26명이 이미 회사를 떠났고 현재 재직자는 1명뿐이다. 공장 구축과 공정 안정화 단계에서 현장 노하우만 흡수한 뒤 계약을 끝내는 단기 활용 구조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 의원은 “반도체 기술은 설계도뿐 아니라 20년, 30년 동안 축적한 사람의 경험과 노하우 그 자체"라고 말했다.
◇ 전직금지 피해 '징검다리 이직'…퇴출 뒤엔 화웨이·SMIC로
이직 경로도 정교해졌다. 27명 중 15명(56%)은 곧바로 CXMT로 가지 않고 중간 기착지를 거쳤다. 장비·소재 협력사, 국내 팹리스, 중국·외국계 반도체 회사, 대학 연구교수, 중개성 업체 등이다. 통상 1~2년인 국내 기업의 전직 금지 약정을 피하려는 우회로로 풀이된다. 퇴사 후 6개월 이내 직행한 인력은 9명이었다. 1년 반 이상 공백기를 둔 뒤 합류한 인력은 3명이었다.
CXMT를 떠난 뒤의 행선지도 문제다. 퇴사자 26명 중 7명이 화웨이 홍콩연구소, SMIC, 하이실리콘, 청두가오전 등 중국 내 다른 반도체 기업으로 다시 옮겼다. 한국 기술이 CXMT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중국 업계 전반으로 퍼지는 '연쇄 유출'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인력은 6명, 미국행은 2명이다. 나머지 11명은 이후 경력이 확인되지 않았다.
◇ '연봉 2배·주택·자녀 교육비'…링크드인 DM으로 파고든 헤드헌터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에게 접근한 해외 헤드헌터의 채용 제안 메시지. 헤드헌터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CXMT를 고객사로 소개하며, 현재 연봉의 60%에서 최대 2배 수준의 보상과 3~5년 고용 보장, 임대주택비·자녀 교육비 지원 등을 제시했다. 자료=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
포섭은 주로 링크드인 메시지로 이뤄졌다. 의원실이 확보한 메시지에 따르면 2024년 5월 한 외국계 서치펌 소속 헤드헌터는 국내 엔지니어에게 “고객사는 CXMT"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HBM 본딩 경력을 갖춘 전문가~디렉터급 시니어 후보를 찾는다고 접근했다. 글로벌 인력업체 중국법인 소속 다른 헤드헌터는 '정부 지원이 탄탄한 중국 첨단 패키징 기업'의 해외 인재 채용을 제안했다. 이사와 생활 정착, 업무용 통역 지원도 내걸었다.
조건은 구체적이었다. 지난해 8월 한국어로 오간 대화에서 헤드헌터는 “연봉은 현재보다 60%에서 2배까지 늘어난다"고 했다. 이어 3년 또는 5년 고용 보장과 3년 뒤 6년 재계약을 제시했다. 매달 임대주택 비용과 자녀 교육비 지원도 약속했다. 근무지로는 CXMT 본사가 있는 허페이(合肥)를 언급했다.
이런 보상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 자금이 있다. 천인계획의 후속 격인 '치밍(啓明) 프로그램'은 계약 완료 시 100만 위안(약 2억원)을 준다. 개인 연구비는 3년간 500만~800만 위안(약 10~16억원), 프로젝트 지원금은 최대 1억 위안(약 202억원)이다. 주택보조금, 자녀 무상교육, 영주권 신청 자격도 따라온다. 중국과학원 반도체연구소의 올해 해외 우수 청년과학자 모집 공고에도 같은 흐름이 보인다. 900만 위안 이상의 연구비와 100만 위안의 생활보조금, 배우자·자녀의 베이징 정착 지원이 명시돼 있다.
▲중국이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운영하는 '치밍 프로그램' 안내 화면. 계약 완료 시 100만 위안, 3년간 개인 연구비 500만~800만 위안, 프로젝트 지원금 최대 1억 위안 등을 제공하고 주택·자녀 교육·영주권 신청 지원도 내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최수진 의원실
◇ CXMT 연구인력 3년 반 새 2.9배…美는 제재, 韓은 “단속 근거 없다"
인력 흡수는 CXMT의 덩치로 이어졌다. CXMT 투자설명서 등에 따르면 이 회사 연구개발(R&D) 인력은 2022년 말 2606명에서 올해 6월 말 7491명으로 2.9배(187.5%) 늘었다. 연도별로는 2023년 말 2891명, 2024년 말 4143명, 2025년 말 6259명이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국내 R&D 인력은 8977명에서 1만118명으로 12.7% 증가했다. CXMT가 공개한 핵심기술인력 5명 중 3명도 삼성전자·마이크론 출신이다.
미국은 이미 대응에 나섰다. 미 국방부는 2025년부터 CXMT를 '중국 군사기업(1260H)' 목록에 올렸다. 군민융합 전략에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의원실에 낸 서면 답변에서 “해외 기업의 합법적 채용·헤드헌팅은 단속하거나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어 별도 조사·단속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산업부의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예산은 해마다 수백억원 규모다. 반면 인력 유출 방지 사업 예산은 '0원'이었다.
최 의원은 “반도체는 우리 경제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인 전략산업인데, 중국의 인재 확보가 대학과 연구기관을 넘어 이제 반도체 핵심 인력까지 정조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미국은 국방부가 직접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데 우리 정부는 우회 이직과 연쇄 유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핵심 인력이 어느 경쟁기업으로 옮기는지 정부가 파악·관리하는 체계를 갖추는 동시에, 인재가 국내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파격적 보상과 재취업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