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우 에너지 휴전” 일방 발표
중간선거 앞두고 에너지 가격 안정화 총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갈등이 다시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에너지 가격 안정에 집중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비판의 수위를 높이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서 에너지 휴전이 이뤄졌고 즉각 발효된다"며 “양측 모두 동의했다. 이를 위반하지 말라"고 적었다. 다만 구체적인 휴전 내용에 대해서는 추가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지지하며 러시아 역시 이를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측으로부터 합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반발에 직면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젤렌스키는 이 전쟁을 여러 번 끝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며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새 대통령을 맞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젤렌스키 대통령의 퇴진까지 거론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을 바라볼 때 에너지 가격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휘발유·경유 가격 안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경유 수출에 관한 합의에 도달한 이후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진행하던 미국 측과의 협상을 조기에 종료했다.
당시 협상에서 미국 대표단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을 공격하는 등 미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미국이 정보 제공을 중단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국산 무기와 미국의 정보 제공에 크게 의존하는 우크라이나에 이러한 압박이 상당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미국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의 제니퍼 캐버노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에 필요한 실시간 정보 중 일부의 제공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이 무기 판매까지 중단할 경우 파장은 훨씬 심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무기 공급 중단에 따른 공백을 자체적으로 메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28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설전 벌이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마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고성과 설전 끝에 파국으로 마무리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정보 공유를 일시 중단한 바 있다. 이후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서 지원도 재개됐다.
하지만 이번 갈등은 우크라이나에 정치적으로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피오나 힐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에 직접 개입할 경우 파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힐 연구원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사실상 정치적 전복 활동에 가담한다면 훨씬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재정 상황도 녹록지 않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흑해를 통한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주요 외화 수입원이 위협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가 2027년에 300억달러가 넘는 자금 부족에 직면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이번 주 유럽연합(EU)과 IMF로부터 추가 금융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세금 제도의 허점을 막고 정치적 주요 인사에 대한 심사·감독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다만 해당 조치들은 일반 국민뿐 아니라 정치·경제 엘리트층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11일 러시아군 공습으로 화염이 피어오르는 모습(사진=AP/연합)
이런 가운데 러시아 내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중재 능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크렘린궁과 가까운 소식통들은 러시아 당국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종전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 공유와 무기 판매를 실제로 중단하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만으로는 러시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휴전' 발표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은 계속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밤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시설을 겨냥한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의 열병합발전소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자도 해당 공격이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발표 이후 발생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