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7거래일 연속 하락…누적 낙폭 21%
삼성전자 9.48%·SK하닉 11.06% 급락
外人 반도체 매도 공세
미 물가·유가 상승, 글로벌 금리 부담
“AI 트레이드 전반 매도세”
위험자산 회피 확산
▲15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454.59포인트(7.57%) 내린 5554.22로 장을 마쳤다.
외국인의 투매 앞에 국내 증시를 이끌던 반도체 투톱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10% 안팎 떨어지고 코스피는 하루 만에 454포인트 넘게 밀렸다. AI 인프라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이 미국의 물가·금리 불안과 맞물리면서, 지난 7월 폭락장을 연상시키는 급락세가 재연됐다는 평가다.
◇ 천문학적 AI 투자, 수익은 어디에…삼전닉스 '와르르'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54.59포인트(7.57%) 하락한 5554.22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 하락폭과 하락률 모두 지난 7월 28일 이후 약 두 달 반 만에 가장 컸다. 지난 6일부터 7거래일 연속 내리막을 걸으며 누적 하락폭은 1449.52포인트, 하락률은 21%에 달했다.
장중 낙폭은 한층 가팔랐다. 코스피는 5.59% 하락한 5673.01로 출발한 뒤 오후 들어 5450.81까지 밀려 9.29%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5500선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장 후반 낙폭을 일부 줄이며 해당 지수를 웃돈 채 마감했다. 코스닥 역시 63.06포인트(7.65%) 떨어진 760.82로 장을 끝냈다.
급격한 하락에 시장 안전장치도 잇따라 작동했다. 장 초반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차례로 발동됐고, 이후 양 시장의 하락률이 8%를 넘어서면서 서킷브레이커까지 가동됐다. 두 시장에서 매매가 각각 20분간 중단된 것은 지난 7월 29일 이후 처음이다.
▲최근 1년간 삼성전자 주가 추이.
낙폭이 특히 두드러진 곳은 국내 증시의 핵심 축인 반도체 대형주였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9.48% 떨어진 21만원, SK하이닉스는 11.06% 하락한 126만2000원에 장을 마쳤다. 두 종목 모두 지난 7월 28일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9거래일 가운데 6거래일 하락했고, 상승세가 멈춘 지난 2일 이후로 보면 24% 가량 떨어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일부터 7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이 기간 31% 급락했다.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낙폭을 키웠다. 이날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 1조4573억원어치, SK하이닉스 주식 1조1112억원어치를 각각 순매도했다. 기관이 두 종목을 사들였지만 순매수 규모는 약 5700억원에 그쳤다. 코스피 전기·전자 업종 전체에서도 외국인은 3조1667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과 기관은 각각 2조207억원, 5007억원을 순매수하며 물량을 받아냈다.
시장 불안을 키운 것은 반도체 업황에 대한 경계심만이 아니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성장세가 메모리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꿀 수 있다는 우려에 더해,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 비용을 감당할 만큼 수익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AI의 성장 기대를 주가에 반영해 온 투자자들이 이제는 실제 수익 창출 능력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AI의 수익성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으로 드러날 경우 관련 인프라 투자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모니터에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서비스업체 페퍼스톤의 크리스 웨스턴 리서치 총괄은 “투자심리가 한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AI 트레이드 전반에서 매도세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수세가 물러선 상황에서 매도 물량이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블룸버그통신의 마크 크랜필드 MLIV 전략가는 이날 아시아 증시의 전반적 급락이 지난 7월 말 폭락장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당시 코스피는 하루 만에 11% 가까이 떨어졌지만, 이번 하락은 AI 투자 열기가 식을 경우 실물경제 성장에도 충격이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AI 관련주 조정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티지 글로벌 프라임의 허베이 천 애널리스트는 한국 시장이 글로벌 AI 종목의 매도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어위브의 자금 조달 문제와 시장 예상보다 높은 미국 물가 상승률이 차입 비용을 끌어올리고, AI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 패닉 장세에 당국도 긴장...“빚투·무분별한 신용공여 경계"
금융당국은 급락세가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 시장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증시 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외국인과 기관의 매매 동향을 살피고 최근 변동성이 커진 배경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글로벌 금리 상승 전망과 AI 반도체 산업의 투자·수익 불확실성, 국제유가 상승 등이 국내 증시의 불안 요인으로 지목됐다. 다만 주가가 떨어지는 속도와 수급 쏠림을 고려하면 시장이 대내외 여건에 과도하게 반응한 측면도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당국은 국내 산업과 금융시장의 기초 여건이 급격한 주가 하락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반도체를 비롯해 방산·조선 등 주력 산업이 양호한 실적을 내고 있고,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금융기관 건전성도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와 유관기관은 국내외 시장 흐름과 투자자 수급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필요할 경우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을 신속하게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과도한 부채와 신용에 의존한 투자는 위험하며 이럴 때일수록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회사들은 무분별한 신용공여를 자제하고, 고객 보호와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