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블루 쓰나미 덮친 AI 인프라…美 표심에 K반도체 긴장

김하나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11.06 11:04

美 중간선거 데이터센터 ‘규제 주지사’ 시대
삼성·SK, 2028년 이후 HBM 수요 ‘안갯속’

스타게이트 오라클 AI 데이터 센터의 일부 구간

▲8월 26일, 텍사스주 아빌린에서 스타게이트 오라클 AI 데이터 센터의 일부 구간이 건설 중인 모습이 항공 사진으로 촬영됐다. 사진=브랜든 벨/게티 이미지

미국 중간선거가 민주당이 공화당 강세 지역까지 휩쓰는 '블루 쓰나미'로 귀결되면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흐름이 한국 반도체 업계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 데이터센터가 몰린 주(州)에서 건설 중단을 공약한 주지사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빅테크의 AI 인프라 확장에 차질이 생기면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물론 메모리 수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업계는 이미 진행 중인 주문보다 2028년 이후 추가 수요와 증설 계획의 불확실성이 커진 데 주목하고 있다.


6일 외신과 미국 데이터센터 감시단체 데이터센터워치(Data Center Watch)에 따르면 주지사 선거가 열린 미국 36개 주 가운데 12곳에서 데이터센터 개발 일시 중단을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거나 개표에서 앞서고 있다. 당선·선두 후보 가운데 데이터센터 세제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겠다고 공약한 후보는 15명이었다. 34명은 데이터센터 전력 비용을 주민에게 떠넘기지 못하게 하겠다고, 27명은 물 사용과 환경 영향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이 확정된 34명으로 좁혀 보면 규제 기류는 더 뚜렷하다. 미국 조사기관 데이터센터워치에 따르면 이 가운데 32명(94%)이 데이터센터 개발에 대해 규제 강화나 조건부 허용, 금지·모라토리엄 중 하나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1월부터 모라토리엄 확대·연장을 지지하는 민주당 주지사들이 이끄는 주가 미국 데이터센터 계획 용량의 45%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변수는 텍사스다. 텍사스는 일정한 투자·고용 요건을 충족한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20년간 세제 혜택을 주며 시설을 끌어들여 왔다. 건설 예정 시설을 포함한 데이터센터 수는 606곳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고, 2030년까지 미국 데이터센터 계획 용량의 2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나 이노호사 당선인은 주 의회가 주민 보호 법률을 마련할 때까지 모든 데이터센터 승인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른바 '텍사스 우선 데이터센터 원칙'에는 전기·용수 요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을 사업자가 입증해야 하는 의무, 보조금 중단, 지역 주민의 사업 찬반 투표권 등이 담겼다.


조지아와 오하이오도 사정이 비슷하다. 미국 3위 데이터센터 시장인 조지아는 장비 구매·임차에 붙는 판매세와 사용세를 면제해 주며 200여 곳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왔다. 브라이언 켐프 현 주지사(공화당)는 2024년 이 세제 혜택을 일시 중단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반면 키샤 랜스 보텀스 당선인은 전기요금·지역사회·환경 영향을 평가할 때까지 주 전역에서 신규 건설을 일시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오하이오의 에이미 액턴 당선인은 개발업체가 전력·용수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정보를 공개하고, 노조 인력을 쓰고, 농지 대신 옛 산업 부지에 짓는 경우에만 건설을 허용하는 '조건부 모라토리엄'을 내걸었다.



미국 데이터 센터 확장 반대 시위

▲7월 27일, 텍사스주 오스틴의 주 의사당에서 열린 텍사스 상원 재정위원회 청문회에 앞서 사람들이 데이터 센터 확장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이 재너/오스틴 아메리칸-스테이츠맨/게티 이미지

빅테크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메타의 디나 파월 매코믹 사장은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행사에서 “선거 이후 데이터센터를 짓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영국 데이터센터 업체 엔스케일과 맺은 텍사스 컴퓨팅 계약을 확대할 수 있는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 HBM·eSSD 주문 '이연' 우려…"2028년이 분기점“


국내 반도체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이 미국 빅테크의 메모리 구매에 미칠 영향이다. AI 데이터센터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탑재한 AI 가속기와 서버용 D램, 낸드플래시 기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이 들어간다. 가동 시점이 밀리면 서버와 가속기 도입이 늦어지고 메모리 주문도 뒤로 밀린다. 전력망 확충 비용 부담이 커지거나 세제 혜택이 줄어 사업성이 떨어지면 일부 프로젝트가 축소될 수도 있다.


고객사의 투자 규모에 미칠 영향도 수치로 나오기 시작했다. 웰스파고는 텍사스의 데이터센터 계획 용량이 10% 줄어들 때마다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가 1.6%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아마존·MS·알파벳·메타 4사의 올해 설비투자 합계가 7200억~7400억 달러로 예상되는 만큼 작지 않은 규모다.



다만 영향이 나타나는 시점은 당장이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본 노무라는 중간 실적 보고서에서 2027년에 가동될 용량의 상당 부분은 이미 건설 중이고, 그 이후 사업들이 지연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영향은 2028년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골드만삭스도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데이터센터 세제 혜택은 제한될 수 있지만 전국 단위의 건설 중단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대형 빅테크는 자금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논란 속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운영비 상승을 흡수하거나 신규 데이터센터를 해외로 돌릴 여력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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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 물량은 확보, 가격은 변수…LTA의 한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늘리고 있는 장기공급계약(LTA)은 수요 변동에 대응하는 완충 장치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실적 발표에서 주요 클라우드 기업을 포함한 고객사 14곳과 LTA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기간은 통상 5년이며, 확보한 물량은 2027년과 2028년 전체 생산능력의 50% 이상이다. 협의 중인 물량까지 더하면 D램과 HBM은 2029년까지 사실상 완판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도 실적 발표에서 2027년 HBM 공급 물량이 이미 완판됐다고 밝혔다. 고객사 10곳과 LTA를 맺었고 10곳과 추가로 협상 중이며, 2030년까지 생산능력의 60~70%를 장기계약으로 채우는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메모리 판매가 당장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은 이유다.


그렇다고 LTA가 수익성까지 묶어두는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LTA 가격이 고객사와 합의한 범위 안에서 시장 가격 변동을 반영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으로 공급 부족이 완화되면 물량은 유지되더라도 가격이 범위 하단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계약으로 확정된 물량이 2028년까지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변수다. 규제 영향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과 겹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시장 가격에 노출되는 구조여서,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둔화하면 이 물량의 가격 협상력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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