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민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모두 9명.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재명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 순이다.
대통령들을 떠올리다 보니 한 가지 '패턴'이 읽힌다. 한 번은 온건한 대통령, 그다음은 강단 있는 대통령. 국민의 선택은 그랬다.
노태우는 군 출신이었지만 온건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물태우'라고 불렀다. 그때는 조롱 같았지만, 지금 평가는 반대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처럼 최고의 선은 물 아닌가.
3당 합당 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 김영삼은 강단(剛斷)이 넘쳤다. 1995년 김영삼은 한중 정상 기자회견에서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섬뜩하게 경고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해체도 '강단의 김영삼' 작품이다.
IMF 외환위기 때 당선된 김대중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정적(政敵)이었던 김중권을 초대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김대중은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전두환·노태우도 사면했다. 모두 김대중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노무현은 말이 강했다. “대통령 못 해먹겠네"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죠" 등 숱한 어록(?)을 남겼다. 2003년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 12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9.6%가 “대통령 못 해먹겠네"를 그해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발언으로 꼽았다.
이명박은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이었다. 이명박 재임 기간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016년 페이스북에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이 대통령은 '아침이슬'을 말하면서 국민에게 감성적으로 호소했다"며 “그 결과 집권 기간 내내 반대파들에게 그 약한 모습이 인질이 되어 제대로 뜻도 펴보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고 회고했다.
▲최경호 정치경제부장(부국장)
박근혜는 '레이저 눈빛'으로 유명했다. 의료계 파업 상황이던 2020년 9월 초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많은 분이 대통령의 눈빛이 '레이저'라는 별명이 붙었던 전임 대통령 눈빛을 닮아간다고 한다." 박근혜의 눈빛은 두고두고 회자됐을 정도였다.
문재인은 온화한 사람으로 비쳤다. 적어도 공식 석상에서 그가 보여준 선량한 듯한 미소와 어눌한 말투는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적폐청산이라는 현대판 사화(史禍)을 일으켰지만, 이미지 덕에 포장만은 나쁘지 않았다.
윤석열은 긴 말이 필요 없을 듯하다. 화를 못 이겨 대명천지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 후과(後果)로 탄핵당한 뒤 직(職)에서 쫓겨난 3년짜리 대통령이다. 윤석열은 너무 강해 스스로 부러진 사람이다.
온강온강(穩强穩强) 패턴대로라면 이재명은 온이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발언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다주택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마귀에게 양심을 팔았나"라고 비꼬았다. '스타벅스 탱크 마케팅' 논란 때는 “악질 장사치의 패륜"이라고 했다. 북한군 포로 관련 야당의 비판에 대해서는 “살인자, 매국노"라고 꾸짖었다.
혹시 이재명이 강이라면 '온강온강'이 깨진 것일까? 설령 윤석열에 이어 이재명 역시 강일지라도 그것은 전체적인 '패턴 붕괴'가 아닌, 일시적 변주(變奏)로 볼 수도 있다.
세월은 유수(流水)요 쏜살이다. 다음 대통령은 누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