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자보상비율 1882%, 중소기업 322%
기업 간 이자 상환 능력 격차 역대 최대
대기업 시설투자자금 대출 1년 새 16%↑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 76%는 운전자금
▲5대 은행의 올해 9월 말 대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75조803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 증가했다.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의 실적 온도 차가 재무 건전성의 격차로 번지고 있다. 대기업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영업이익과 투자 여력이 빠르게 개선되는 반면 중소기업은 경영활동에 필요한 운영자금 확보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기업 규모별 이자 상환 능력 차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확대됐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1882%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의 약 19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은 322%로 이자비용의 3배 수준에 머물렀다. 두 기업군의 격차는 1560%포인트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5년 1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이익이 금융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해 2분기에는 대기업 362%, 중소기업 226%로 격차가 136%포인트에 불과했다. 이후 지난해 말 345%포인트로 확대됐고 올해 1분기에는 864%포인트까지 커졌다. 불과 1년 사이 기업 규모별 이자 상환 능력의 차이가 가파르게 확대된 셈이다.
격차 확대의 중심에는 제조업 대기업의 실적 개선이 있다. 올해 2분기 제조업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3903%로 전년 동기 440%에서 약 9배 뛰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 주력 업종의 영업이익이 급증하면서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크게 높아진 영향이다.
제조업 중소기업도 같은 기간 이자보상비율이 263%에서 401%로 상승했다. 다만 대기업과 비교하면 개선 속도에 차이가 뚜렷하다. 중소기업의 수치가 높아졌다고 해서 자금 사정까지 충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기 둔화기에 부채 상환과 투자 축소를 선택하면서 이자비용 자체를 줄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비율 상승을 영업 여건 개선만으로 해석하기 어렵고, 기업들의 재무구조 조정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차이는 은행 대출의 용도에서도 확인된다. 5대 은행의 올해 9월 말 대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75조803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 증가했다. 지난해 9월 말 65조3676억원이었던 잔액이 1년 만에 10조원 이상 늘었다. 기업들이 생산설비 확충과 사업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적극적으로 조달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중소기업의 시설자금 대출은 같은 기간 333조6350억원에서 337조8514억원으로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투자 목적의 자금 수요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출 증가분은 사업 운영에 필요한 자금으로 몰렸다.
실제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583조8656억원에서 올해 9월 말 601조3648억원으로 17조4992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13조2827억원이 '운전자금 대출' 증가분이었다. 전체 대출 증가액의 약 76%가 인건비와 원자재 구매 등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채워진 것이다.
대기업은 대출 증가세에서도 투자와 운영 목적이 비교적 고르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기업 전체 대출 잔액은 163조3677억원에서 194조3376억원으로 19% 늘었다. 시설자금 대출 증가율이 16%, 운전자금 대출 증가율이 21%로 두 항목 모두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은행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출 흐름이 엇갈리는 배경으로 자금 조달 여건과 투자 수요의 차이를 꼽고 있다. 대기업은 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을 늘리는 데다 생산적 금융 확대에 따른 은행권의 기업금융 공급도 확대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높은 대출금리 탓에 신규 투자에 소극적이다. 개인사업자 역시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매입 관련 시설자금 수요가 줄면서 대출 증가세가 제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