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연애에 지친 당신에게 "썸이 싫어요"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6.08.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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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장정일의 시이다. 작품에서는 인스턴트처럼 가볍고 일회적인 사랑을 비틀어 꼬집는다.

이처럼 가벼운 사랑이 만연한 시대다.

‘카톡, 카톡’…. 직장인 A(30·여)씨는 메신저 알림 소리가 날 때마다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최근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한창 ‘썸’타는 중이다. 매일 아침 출근은 잘했는지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가 늘어갈수록 그는 ‘소개팅남’에서 ‘썸남’으로 격상한다.

그러다 어느날 썸남으로부터 아무런 말 없이 연락이 뚝 끊겼다. A씨는 왜 연락이 없는지 굳이 되묻지 않았다. 어차피 썸이었으니까, 꼭 그가 아니어도 세상에 남자는 많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

"우리 사귀자"고 약속하기 전까진 모두 다 ‘썸’일 뿐이다. 남녀 사이에 ‘썸싱’(something)이 있긴 한데 정식으로 교제할 만큼의 호감인지 아닌지 불확실한 상태를 썸이라고 부른다. 썸은 연애 직전 간질간질한 설렘이기도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함과 위태로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도 서로의 진정한 짝을 찾아 헤매는 과정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1일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는 2011년 1월 1일∼2016년 7월 27일 블로그(7억4555만9901건)와 트위터(98억2054만8716건)를 분석해 스마트 세대의 연애에 대해 알아봤다.



◇ 내키지 않으면 문자 읽고도 무시 "썸이 싫어요"

5년 전인 2011년만 해도 ‘썸’(2만328회)보다는 ‘어장 관리’(3만7495회)의 사용 빈도수가 더 높았다. 여러 이성을 후보로 두고 계속 여지를 주며 ‘관리’하지만 누구와도 확실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장관리는 썸과 일맥상통한다.

2012년 ‘썸’(4만2911회)은 ‘어장관리’(3만9299회) 언급량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2014년 가수 소유와 정기고의 노래 ‘썸’이 발표되자 언급량은 40만여회로 폭발적으로 늘어 현재까지 애매한 남녀 관계를 지칭하는 대표 단어로 자주 쓰인다.

썸을 탈 땐 ‘전화’(4544회)보다는 ‘카톡’(8949회)이나 ‘문자’(7725회)가 제격이다. 전화는 부담스럽지만 카톡이나 문자는 읽고도 내키지 않을 때 답장을 하지 않으면 된다. ‘읽씹’(읽고 무시하기)은 2011년 45회로 처음 등장해 지난해 385회까지 언급됐다.

썸의 감성어로는 ‘설레다’의 언급량이 총 3만3405회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싫다’, ‘당황’, ‘짜증’ 등 부정적인 단어의 언급량도 눈에 띈다. ‘싫다’는 총 2만9000여회 언급돼 ‘설레다’에 이어 언급량 2위를 차지했다. 최근 5년간 언급량도 2011년 1천여회에서 지난해 8천600여회로 8배 이상으로 뛰었다.



◇ "페이스북으로 카톡 프사로" 고르고 또 고르고 까다로워진 연애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서로에게 시간과 돈, 감정과 노력 등을 쏟아 붓는다. 바쁘고 팍팍한 세상에 이런 노력이 아깝다면 단순 호감에서 연애로의 관계 발전은 힘들 것이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상대가 진정 나와 맞는 사람인지 더 깐깐하게 따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과 연애의 연관어로 ‘고르다’·‘까다롭다’는 2011년 10만여회 언급되기 시작해 지난해 2배 가까이 늘어난 17만2000여회로 집계됐다. ‘고민’은 매년 평균 5만여회씩 꾸준히 언급됐다.

썸을 시작하기 전에도 페이스북과 프로필 사진(프사)을 미리 확인하며 상대의 외모나 취미, 취향을 미리 파악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썸의 연관어로 ‘페이스북’은 총 5천414회, ‘프로필 사진’은 1478회 등장했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 전공교수는 "SNS로 먼저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교환한 뒤 만나는 요즘 소개팅에는 경제적 사고가 담겨 있다"며 "불경기 속에 연애도 하나의 ‘특권’이 되면서 최소의 노력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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