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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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시대라고들 한다. 대체로 융합하면 좋은,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기업이 융합을 선택하면 밝은 미래가 펼쳐지고,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대로 융합을 거부하는 기업은 보수적이고 퇴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과연 그럴까.
융합이란 기존의 업종 경계선이 무너지고 자신의 영역이 어디인지, 누가 적군이고 아군인지 모르는 혼돈,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르는 혼란의 시대를 의미한다.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런 혼란의 시대를 경험한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기록을 보면 그 고통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자식을 인질로 상대방에 보낸다고 한번 생각해 보라.
융합의 시대 이전 자동차 산업을 보면 현대차의 경쟁자는 일본의 도요타나 미국의 GM(지금은 쇠락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지만), 포드였다. 그러나 융합의 시대인 지금 자동차는 운전의 도구라는 고유의 기능을 넘어 자율주행 기술이 결합되면서 커넥티드 카가 되고, 결국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덩어리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현대차의 경쟁자는 갑자기 네이버, 카카오 같은 포털이 되고 차량공유 서비스기업인 우버와 쏘카도 라이벌로 등장한다. 현대차의 입장에서는 사방에서 갑자기 적이 출현한 형국이 되어 버린다.
게임회사 중에 이런 황당한 상황에 직면한 기업으로 닌텐도가 있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 닌텐도는 젊은이의 ‘우상’이다. 동키콩이나 젤다의 전설과 같은 게임으로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 잡은, 닌텐도의 게임을 탑재한 게임기 ‘닌텐도DS’는 전세계적으로 1억대 이상 팔린 메가히트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런 괴물 게임기를 초토화 시킨 제품이 경쟁자였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가 아닌 스마트폰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할 당시 닌텐도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폰은 ‘전화’였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휴대 전화의 연장선의 제품으로 아무리 보아도 게임기와는 거리가 멀게 보였다.
스티브 잡스 역시 그런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2007년 1월 9일,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 처음 아이폰을 소개했다. 그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무게 142그램짜리 아이폰을 이렇게 소개했다.
"오늘 애플은 전화를 다시 발명합니다."
그날 잡스는 아이폰의 전화번호 앱, 주소록, SMS 기능, 고음질의 통화를 강조했다. 여기에는 게임기로서의 아이폰은 없었다.
닌텐도의 방심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기존에 폴더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이 있었으나 닌텐도의 아성을 위협하지 못했다. 게임의 중심은 여전히 콘솔게임으로, 모바일게임은 게임시장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게임의 중심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 시장이었으니 닌텐도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PC 기반의 온라인게임이 확산됐지만 틈새시장으로 치부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닌텐도는 하드웨어와 게임소프트 양자에서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의 초기 의도와는 달리 게임기로 진화했다. 지난해 애플 앱스토어 게임 매출은 300억 달러(약 31조 원), 구글의 플레이스토어는 180억 달러(약 19조 원)에 이르렀다. 게임은 두 회사의 전체 앱 마켓 매출 가운데 82%인 483억 달러(약 51조 원)를 차지한다. 이와 반대로 닌텐도는 2011년 반기 결산에서 매출은 40% 감소하고 2000년 이래 처음 적자로 전락했다. 특히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융합이라는 현상은 특히 기존 시장을 지배하던 기업에게는 혼란과 좌절,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융합에 어두운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융합은 파괴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던져 주기도 한다. 아마존 정글의 자연발화가 기존의 생태계를 초토화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국에서는 카카오가 융합에 기반한 대표적인 기업일 것이다. 카카오 O2O사업의 계기에 대해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의 혁명적이고 폭발적인 가능성에 대한 느낌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서 카카오톡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스마트폰이 미칠 영향력이 예측대로 흘러갔는데, 우버의 등장이 저에게는 다시 한 번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버의 등장은 모바일 혁명이 그간 온라인, 데이터, 디지털 쪽에 머물러있던 것을 일거에 오프라인과 연결되는 그런 혁명적 가능성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닌텐도에 치명상을 준 스마트폰은 반대로 카카오에게는 메신저와 O2O 두 가지 비즈니스에서 큰 기회를 줬다.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는 물론 카카오택시, 카카오드라이버 그리고 카카오뱅크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충격과 변화를 안겼다.
융합은 파괴와 기회라는 야누스적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고, 가장 강한 기업도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진실, 반대로 오늘은 약자이지만 내일은 다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 이 모든 것을 내포하는 것이 바로 ‘융합’이다. 융합의 시대, 위기와 기회 속에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