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세… 전문가들 원인 찾기 '고군분투'
산유국 증산시 원유시장 패닉… 사우디 "안정화 도모"
리비아 석유항구 재개로 공급 회복…"설득력 없다"
美 막무가내식 정책 여파 기초체력 약화의 길로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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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가까이 고공행진 하던 유가가 최근 약세장을 펼치고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배럴당 74.15달러 고점을 기록한 후 유가는 23일 저점 67.89달러까지 3주만에 10% 가까운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유가의 하락 이유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은 각종 부정적 뉴스와 루머의 혼합물을 인용, 하향추세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시장을 공급과잉에 빠트릴 수 있다는 우려감이다. 최근 아시아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우디가 생산량을 늘렸다는 보도가 나왔고, 많은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증산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생산 지침을 붕괴시키는 행동으로 해석했다. 사우디를 필두로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대대적 증산에 나설 경우 원유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사우디가 아시아에서의 계약을 늘린 것은 11월 미국의 이란 제재 부과를 앞두고 원유시장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일 뿐, 카르텔 내부의 붕괴로 보지 않는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란은 지난 달 OPEC 정례회의에서 합의했던 양을 초과하는 증산 물량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고, 사우디 역시 합의 계약을 위험에 빠트리고 싶어하지 않고 있다.
또다른 요인은 리비아 석유항구의 재개 소식이다. 그러나 25년 경력의 원유 전문가 댄 디커는 "다양한 지정학적 위험요인으로 랠리를 이어가던 유가가 리비아 공급 회복 요인 하나 때문에 급락했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전했다.
디커 전문가는 지난 1994년부터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근무한 베테랑으로 원유, 천연가스, 무연 휘발유, 난방유 선물 계약을 담당해왔다.
설령 리비아가 유가 하락 요인 중 하나라고 해도, 리비아 원유수출량은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친 만큼 영향력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리비아의 산유량이 2018년 남은 기간 동안 계속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분석가들은 세계 최대 원유소비국인 중국의 원유 수요 둔화 위협을 언급했다. 중국 경제성장 둔화에 대한 예측은 지난 10년 간 매우 빈번하게 제기됐지만, 대부분은 틀린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에도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금융시장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볼 수 있다. 원유시장의 펀더멘털보다 투기 자본의 흐름에 따라 선물시장이 출렁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기세력의 움직임에서도 최근 유가 급락세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매주 금요일 발표하는 미결제 약정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유가가 7달러 하락하는 동안에도 롱포지션은 안정된 흐름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디커 전문가는 "현재 원유시장은 내가 35년 동안 본 시장 중 가장 펀더멘털적으로 좋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유가 하락세에 대해 언론들이 저마다 다양한 답변들을 내놓고 있지만, 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오직 한 가지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바로 트럼프발(發) 무역전쟁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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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시장은 주식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원자재는 통상 시간에 매우 민감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현재 거래되는 9월 상품 선물 계약은 시장이 6개월 후에 어디에 있을 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시장 참가자들은 거래 만기일(다음달은 8월 28일)에만 가격 전망에 주목한다. 이 점 때문에, 원자재 시장은 주식시장보다 현재의 위협에 훨씬 예민한 편이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파괴적 경제 위협에 증시보다 상품 가격이 훨씬 크게 반응하는 이유다.
옥수수 가격이 떨어지고 있고, 대두 역시 주저앉았다. 통상 경기 지표로 활용돼 ‘닥터 코퍼(구리 박사)’로 불리는 구리 역시 나쁜 예후를 보이고 있다. 아연, 주석, 백금과 같은 산업용 금속도 지난 상반기 기록한 고점 대비 15∼35% 가량 빠졌다.
대부분 금속, 농산물 등 일반적인 상품시장이 5월 말 미국의 관세 준비기간을 앞두고 붕괴된 것과는 달리, 석유는 상승세를 유지하며 펀더멘털적으로 얼마나 강한 지 스스로 입증해냈다. 그러나 원유조차도 세계 무역전쟁이라는 파괴적인 경제력에 대적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디커 전문가는 "최근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공황 상태에 빠져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무역전쟁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상품 섹터를 훨씬 넘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분야든 현 시점에서 투자는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 의회,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에서 자기파괴적인 길을 택한 트럼프 대통령과 갈라서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들은 므누신 재무장관을 향해 관세의 합법성과 출구전략에 대한 질문에 답할 것을 요구했다. 다수의 중진의원들은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무역정책 행보를 중단시킬 법안을 제안한 상태다.
디커 전문가는 "현재 미국경제는 4% 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소비자 물가가 급격히 오르고,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등 원자재 이외의 분야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면 트럼프도 무역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 전까지는 석유나 다른 원자재 주식에서 일단 빠져나오는 편이 유리하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만큼 예측하기 힘든 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제유가는 23일(현지시간)에도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21일 이후 약 한 달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0.5%(0.37달러) 떨어진 67.8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9월물 브렌트유는 비슷한 시각 배럴당 0.01%(0.01달러) 하락한 73.06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