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성 재배환경 변화 맛 향 달라져
와인 생산량 감소에 코르크도 타격
보리도 수확량 줄며 맥주 생산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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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너지경제신문) |
와인·맥주 등 작물을 주재료로 하는 주류산업이 기후변화로 인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포도 생산량과 보리 수확량이 감소하고 품질도 떨어져 유류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다.
와인은 포도가 주재료인 만큼 포도의 품종, 재배 상태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와인 생산지는 점점 줄고 있고 코르크 마개의 ‘질’ 역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품질저하를 겪고 있다. 실제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의 포도 농장주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포도농장을 옮기는 등 대안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맥주도 예외가 아니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 맥주 주원료인 보리 수확량이 줄고 맥주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높아져 맥주 소비량도 큰 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 기후변화, 포도 재배환경에 변화 일으켜...이탈리아 와인業 ‘비상’
지난 28일(현지시간) 美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와인 산업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포도 재배 농장과 함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난화가 포도 생산 방법이나 장소의 변경을 불가피하게 만들면서, 글로벌 와인 산업의 재편도 시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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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베네치아주 라우셰도 지역에 사는 포도 농장주 리비오 살바도르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키우는 포도의 10% 정도는 그냥 버릴 수밖에 없다"며 "거의 열대기후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프로세코(prosecco), 피노그리지오(pinotgrigio) 등 이탈리아 화이트 화인의 대표 생산지로 명성 높던 이 지역이 지구촌 기온 상승을 보여주는 ‘안내 표지판’이 됐다고 WP는 전했다.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와인 재배의 최적장소로 꼽혀 왔다. 하지만 평균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기온이 높아지면 포도 속 당분이 더 빨리 알코올로 발효돼 향과 맛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함으로 그만큼 수확시기가 앞당겨진다. 최근 이 지역에서 열린 ‘와인 산업과 기후변화’ 토론회에서 농업연구소 디에고 토마시 연구원은 "1990년대 내내 최대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경우는 한두 번이었던 데 반해, 올해는 벌써 13일이나 됐다"며 "특정 기후조건을 고려한 포도밭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도 재배, 다시 말해 와인 산업도 기후변화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일부 와인 생산업자들은 포도농장을 해발 고도가 좀 더 높은 지역으로 옮기기도 했다.
문제는 와인업자들에게 이런 변화가 ‘모험’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와인의 상업적 정체성과 가치는 테루아르(terroirㆍ포도 재배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데, 여기에 중대 변화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WP는 "와인 생산자들은 기후 변화 논의 자체를 꺼린다"며 "그러나 이제 포도 재배의 변화를 부정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농민들은 포도가 받는 열을 식힐 새로운 관수 체계, 포도나무 잎을 늘리는 ‘그늘 전략’을 실험하는 등 위기 타개를 위한 묘수를 찾고 있다. 아예 잎을 일찍 잘라내 포도를 더위에 더 익숙해지도록 재배방법을 변화시킨 농장주도 있다. 피타르스 포도원을 운영하는 파울로 피타로는 "청소년 시절에는 포도 수확철이 10월이었는데, 20대에는 9월로 변하더니 이제는 8월 말로 당겨졌다"며 "이는 기후변화와 기술변화, 모두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 과거 연구조사결과 뒷받침...‘와인 생산’에 이어 ‘코르크’까지 타격
기후변화로 인한 와인산업의 악영향은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과거부터 이미 제기되고 있다. 과거 201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한 연구는 2050년께 지구 평균기온이 4.7도 또는 2.5도 상승한다는 시나리오를 적용해 전 세계 주요 와인 산지 9곳의 생산량을 예측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세계 최고 와인 산지로 꼽히는 프랑스 보르도, 론, 투스카니 지방에서 2050년 와인 생산량이 85%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70%, 남아프리카는 55%가량 와인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린 웹 호주 멜버른대 토지식품연구소 교수는 "호주 포도 생산은 기후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생산량이 현재보다 25%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는 약 25년 이상 살 수 있는데 현재 기후에 맞춰 포도나무를 심게 되면 투자 수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값비싼 프리미엄 와인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는 결과도 있다. 프리미엄 와인에 사용하는 포도는 상당히 예민한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기후 변화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화이트 미국 유타주립대 교수는 "지구의 기온이 2020년 1.2도, 2050년 2.5도, 2080년 4.4도 상승하게 되면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포도 생산이 늘면서 프리미엄 와인 생산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엄 와인 생산량의 약 80%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와인의 상징이기도 한 코르크 마개의 재료인 ‘코르크 참나무’ 역시 지구 온난화를 피해갈 수 없다.
지난 2014년 포르투갈 리스본대 연구진이 ‘실험실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럽 남서쪽과 아프리카 북서쪽에서 자라는 코르크 참나무의 껍질 두께가 얇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껍질의 두께가 최소 27㎜는 돼야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3~1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결과였다.
한편,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50년래 최악의 포도 흉작으로 올해 ‘프로세코’ ‘피노 그리지오’ 등 표준 슈퍼마켓 와인 가격이 30%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세계 3대 와인 생산국 생산량이 지나치게 덥고 추운 날씨에 따라 지난해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 기후변화에 맥주 생산 차질로 가격 ‘폭등’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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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와인산업에 이어 맥주산업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 맥주 주원료인 보리 수확량이 줄기 때문이다.
농업 전문가와 기후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가뭄과 폭염이 잦아질 경우 보리의 수확량이 줄어들어 맥주 생산도 차질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는 연구결과를 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플랜트’에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RCP 8.5 기후변화 시나리오), 폭염과 가뭄의 지속으로 인해 2099년에는 3%에서 17%까지 보리 수확량이 줄어들어 맥주 생산량은 2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구안 다보 중국 칭화대 교수는 "현재와 같은 경제 수준과 탄소 배출량을 유지한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예측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면서도 "맥주는 단적인 예일 뿐 기후변화가 우리 먹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맥주값은 평균 두 배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맥주 생산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맥주가 귀해져 가격이 올라간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물가상승 효과를 무시하더라도 2099년 세계 맥주 가격이 지금보다 평균 2배 정도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심리가 위축돼 자연히 맥주 판매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폴란드의 맥주 가격이 무려 5배 뛰고 아일랜드와 벨기에, 체코에서는 현재 가격의 2배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국가에 특히 큰 타격이 예상되는 것은 맥주의 주요 생산국이면서 자체 소비량도 많고 또 원료인 보리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또 생산량 감소에 따른 가격 급등으로 맥주 소비량도 큰 폭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국가는 ’호가든‘ ’레페‘ ’스텔라‘ 등으로 유명한 벨기에 맥주로 나타났다. 2099년 벨기에의 맥주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가격 상승에 따라 맥주 판매량은 38%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됐다. 그 뒤로 독일(-31%)과 영국(-20%), 러시아(-18%)산 맥주 판매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도 각각 14%, 9%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세계 맥주 판매량은 16%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UC 어바인)의 스티븐 데이비스 교수는 "기후변화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어떤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며 "장래 기후와 이로 인한 가격책정 여건에 따라 전 세계 수억 명이 맥주를 즐길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보리 수확량과 맥주 가격 및 소비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량화해 예측한 첫 시도라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