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의 눈]'수주 1위' 한국 조선업은 아직 배고프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2.12 10:55
기자의 눈

▲산업부 송진우 기자

"나는 아직 배고프다."

2002년 열린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남긴 명언. 그는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을 16강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대에 아직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국민을 비롯해 대외적으로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와중에 그가 생각한 것은 단 한 가지, 보다 높은 성과였다.

지금 한국 조선업 상황이 딱 이렇다. 올해 한국 조선업은 연간 수주실적에서 7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달성을 눈앞에 둔 상황.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선박이 친환경 기조와 맞물리면서 ‘잭팟’ 수준으로 발주가 급증, 올해 수주 낭보가 연이어 국내로 전해졌다. 대외적으로 2015~2017년 동안 지속된 수주절벽을 극복할 계기가 비로소 마련됐다는 평가도 다수 제기됐다.

하지만 조선업계 종사자의 속사정은 다르다.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 이르다는 게 공통적인 시각이다.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호황기 시절과 비교하면 아직 한숨만 나온다" 20년 넘게 조선업에 종사한 이들이 털어놓은 푸념이다.

과거 한창 잘나갔던 시절, 우린 수주목표 규모부터 남달랐다. 2013년 현대중공업이 수립한 수주목표는 297억 달러로, 올해 수주목표(148억 달러)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삼성중공업(65억 달러)과 대우조선해양(82억 달러) 역시 평균적으로 120억 달러를 웃도는 금액을 수주목표로 설정했었다. 거제도에서는 강아지조차 1만 원짜리 지폐를 몰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던 때 말이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18년 조선 3사가 맞닥뜨린 현실은 냉정하리만큼 차갑다.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조선 ‘빅2’ 업체가 여전히 도크 재가동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전체 11개 도크 가운데 4개(군산조선소, 해양공장, 울산내 4·5도크)가 가동 중단됐다. 삼성중공업은 도크 8개 중 6개만 가동이 원활히 이뤄지는 중이다.

구조조정 얘기가 끊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감이 없으니 쉴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과거처럼 수주가 해마다 100~200억 달러씩 물밀듯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12월에 이른 현재 올해 수주목표를 달성한 조선사가 단 1곳도 없다. ‘수주 1위’ 라는 타이틀이 높인 외부 기대치, 그리고 내부 실정 간의 온도차가 뚜렷한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희망은 존재한다. 그리고 분명하다. 보수적인 전문가조차 월등한 기술력과 IMO 환경규제, 그리고 오랫동안 구축된 화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내 조선업계가 다시 부활할 것이란 전망을 감히 딱 잘라 부정할 수 없을 테다. 다만, 시기가 문제다.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할 시점을 우리 조선업계가 앞당길 수 있을지. 7년 만에 세계 수주 1위 달성을 목전에 둔 한국 조선업은 말한다. 아직 배고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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