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新키워드] 일하는 방식의 혁신..."빠른 전환만이 살 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1.0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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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쿠팡 제공)


[에너지경제신문=류세나 기자] ‘크게 생각하되 작게 시작해서 민첩하게 행동으로 옮겨라.’

최근 경영계의 고민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한 발 앞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춰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한 최적의 업무방식을 찾기 위해 고심중인데 과거 스타트업과 IT 기업들에서 주로 도입해 온 ‘애자일(Agile)’ 방식이 새삼 경영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엔 젊고, 작은 조직에만 어울리는 업무방식으로 여겨졌던 ‘애자일’은 최근 삼성을 비롯해 SK, LG 등 국내 대기업들에도 점진적인 도입을 논의중이다. 이는 조직의 유연성을 극대화해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혁신의 발판으로 삼아 나가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 간결화된 의사결정 구조…버릴 것도, 취할 것도 ‘빠르게’

칸막이로 오와 열이 맞춰진 직선형 공간구성, 철저한 상하식 조직문화가 투영된 ‘T’자형 책상 배치. ‘회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다.

구획을 정리한 칸막이는 정돈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구성원간의 소통을 가로 막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실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대화하는 모습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답처럼 여겨졌던 기업들의 사무실 풍경이 느리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파티션과 고정좌석이 사라지고 그날그날 업무에 따라 자유롭게 업무 위치를 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사무실 환경을 바꾼다는 것을 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칸막이를 허물어 소통의 기회를 넓히고, 또 개별 프로젝트에 따라 소규모 팀을 유기적으로 꾸려 나갈 수 있게끔 한 조치다.

사무실 분위기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도 보다 단순하게 조정되고 있다. ‘CEO-본부-실-부-과-팀’ 등으로 구성됐던 기존 형태에서 ‘CEO-본부-팀’ 등 보다 간결하게 바꿔 빠른 의사결정에 최적화할 수 있게 변화하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이러한 운영 방식을 두고 ‘애자일 전략’, ‘애자일 조직’이라고 부른다.

애자일 전략은 ‘민첩함’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애자일(Agile)’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랜 기간 많은 자원을 투자하면서 비밀스럽게 제품을 완벽하게 개발하기 보다는 빠른 속도로 시제품을 출시해 고객과 시장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수정·보완해가는 방법론을 뜻한다.

기획부터 설계, 개발, 테스트 등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기존 조직(워터폴, Waterfall)과는 대조적인 방식이다. 또 소규모로 팀을 꾸리고 구성원 각자에게 오너십이나 의사 결정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도 애자일 조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창안한 방법론인데 시장 환경 변화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스타트업, IT 기업들을 넘어 보수적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금융권, 대기업 등으로 시나브로 확산하고 있고 있다.


◇ 의사결정부터 추진·결과 도출까지 ‘일사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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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오픈라운지. (사진=쿠팡 제공)

애자일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을 ‘빠른 성과 도출’이라는 목표를 최우선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해외 IT 업체들이 애자일 방식을 효과적으로 정착시킨 기업으로 꼽힌다.

구글은 소수의 개발자로 구성된 작은 조직을 구성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 3개월 가량 단위로 성과에 따라 인력 인력과 자원을 보태기도, 덜기도 하면서 프로젝트의 강약을 조절했다. 이는 곧 제품 출시 기간의 단축과 생산성 증대 등으로 이어졌다.

아마존은 공식 조직도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있으면 벤처 캐피탈 방식으로 사업성을 평가하고, 초기 투자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즉각적으로 전담 임원을 배치해 독립 사업조직으로 육성해 나간다. 또 대부분의 의사결정도 2~3단계 내로 최종 결정권자인 CEO까지 도달해 보다 기민한 대응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애자일 도입 기업으로는 이커머스 기업 쿠팡을 꼽을 수 있다. 쿠팡은 국내에서 애자일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2012년 10월 애자일 방식을 도입했다. 회사 설립 3년차 때의 일이다.

당시 30명 가량의 작은 개발조직이었던 쿠팡은 모바일 대응을 위한 새로운 개발 프로세스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김범석 대표가 주도적으로 나서 먼저 애자일 방식의 운영을 제안했다. 2개월 주기로 개발 및 실행한 결과물을 점검하고, 최종 검증된 서비스를 정식 적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쿠팡의 상직적인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로켓배송’과 ‘쿠팡맨’도 모두 이 같은 애자일 조직운영을 통해 탄생된 결과물들이다.

특히 이러한 조직문화는 6년여가 지난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열린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러운 조직 문화가 형성됐다. 이 회사 직원들은 하루 평균 근무시간의 삼분의 일 가량을 회의실은 물론 휴게공간, 화장실 등을 드나들며 보낸다. 이처럼 이동하는 시간도 낭비가 아닌 커뮤니케이션 시간으로 생각한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직원들간의 우연한 만남이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로 발전한다는 경영진들의 경험 아래, 직원들의 우연한 만남을 보다 권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엘리베이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에 작업 및 소통이 가능한 ‘오픈라운지’를 만들기도 했다.

세계적인 인기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를 만든 라이엇게임즈도 애자일 전략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는 케이스다. 2011년 국내 서비스 론칭을 시작으로 한국에 뿌리 내린 라이엇게임즈 한국지사 역시 이미 애자일 문화를 적용하고 있는 미국 본사와의 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2015년부터 애자일 문화를 서울 오피스 내에 담기 시작했다.

적은 인원으로 빠르고, 또 효과적으로 게이머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원 교육부터 채용 기준, 업무 프로세스 등을 변경하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상황에 따른 능동적인 업무방식으로 밸류업해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채용 단계에서 협업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 등의 소프트 스킬(Soft Skill)을 갖췄는지 여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상황에 따른 유연함을 발휘해 프로젝트 특성별로 적용해 나가고 있다는 게 라이엇게임즈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애자일 방식 도입 후 개인의 성장은 물론 회사 만족도 상승, 게임 이용자들에게 가치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면서 "이런 개선 활동을 성공적으로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자일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경영진의 역할과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라이엇게임즈는 성공적인 애자일 문화 정착을 위해 무엇보다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보고 사내 다양한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컨퍼런스 참석 및 도서구매 지원 등의 정책을 수립·운영중이다.


◇ 레고처럼 붙였다 뗐다 자유자재…탄력적 조직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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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그룹 삼성동 신사옥 회의실. (사진=HD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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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그룹 사무공간. (사진=HDC 제공)

스타트업이나 IT 기업들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짙은 재계 기업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변화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적용사례가 눈에 띄게 많진 않지만,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다루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점진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는 대기업도 시장과 고객들의 요구를 민첩하게 반영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진데 따른 변화다.

4대 그룹 가운데 애자일 전략에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곳은 SK다.

SK그룹 핵심 계열사 중 한 곳인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하반기부터 일부 부서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해 온 임원 중심의 애자일 조직을 올해부터 전사로 확대 시행한다. 직급과 직책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조직방식을 탈피해 프로젝트 단위의 애자일 조직을 운영할 계획으로, 이를 통해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고 동시에 실행력도 높여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SK브로드밴드도 작년 11월부터 CEO 산하 부문 일부를 애자일 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부서간 경계를 허물고 사업 및 프로젝트에 따라 소규모 팀을 구성하도록 했다.

‘스쿼드(Squad, 분대)’로 불리는 소그룹과 스쿼드를 여러 개 모은 ‘트라이브(Tribe, 집단)’로 단순 구성했다. 같은 트라이브 내에서는 서비스 및 프로젝트 진행 여부에 따라 새로운 스쿼드를 만들었다가 해체하는 일이 별도의 발령 없이도 자유롭게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삼성도 삼성전자, 삼성SDS 등 일부 계열사와 프로젝트 단위로 애자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7’ 등에 탑재하는 SW를 개발할 때 애자일 프로세스를 활용했다. 기존 워터폴 방식 대신 애자일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해 나가면서 당초 계획보다 1~2개월 가량 개발기간을 단축하기도 했다. 현재도 프로젝트별로 필요성이 요구되는 때에는 애자일 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이 삼성 측 설명이다.

LG전자도 일부 개발팀과 프로젝트 단위로 애자일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중이다. SW 개발에 주로 활용됐으나 최근에는 하드웨어나 기구 설계에도 애자일의 콘셉트가 적용되기도 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애자일 방식 근무를 통해 개발 조직 외 기획, 품질조직과도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하다"며 "특히 조직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HDC그룹은 2017년부터 애자일 조직 만들기가 한창이다. 임원진을 기용할 때도 통합적인 기획능력과 민첩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인물들을 선별하는 데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이는 정몽규 HDC 회장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정 회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직원 스스로 사업가적 마인드를 갖고, 자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에자일한 조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또 작년 8월 말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도 고정된 좌석부터 없애고, 그날의 업무에 따라 자유롭게 팀을 구성해 1~4인 그룹으로 배치된 책상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게끔 바꿨다.

회의실도 보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업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의자, 테이블 대신 소파로만 구성하는 등 곳곳에 배려를 녹여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론 신기술이 기존 산업을 덮치고, 상품의 유행주기와 보다 짧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신규 브랜드의 성공 확률은 점차 낮아지고, 수년간 공들여 만든 야심찬 거대 프로젝트도 흥행을 담보받지 못한다. 과거처럼 ‘○○전문가’나 경영자의 ‘감(感)’만을 믿고 조직이 느리게 움직여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적자원(HR) 분야의 석학이자 베스트셀러 ‘부품사회’의 저자인 피터 카펠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장 몇 달 후 상황도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에 과거처럼 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분야와 관계없이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애자일은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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