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말못할 고민’...KCGI 공격빌미 알면서도 조현민 복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6.11 16:01

"전무 선임은 정관 위반" 논란일자 강성부 문제 제기 가능성
‘조현아 호텔·조현민 진에어’ 경영분할 잠정합의 분석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동생인 조현민 전무를 경영 일선으로 불러들이면서 파장이 클 전망이다. 조 전무가 ‘물컵 갑질’로 사회적 공분을 샀던 만큼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비판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그룹 지주사 한진칼의 경영권을 노리는 KCGI는 절차상 하자 여부 등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 한진칼 정관 제34조 논란···조현민 선임 절차 정당했나


11일 조현민 전무는 전날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발령을 받고 이틀 연속 서울 소공동 한진칼 사옥으로 출근했다. ‘물컵 갑질’ 사건으로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지 1년 2개월여만이다. 그는 앞으로 그룹 사회공헌활동과 신사업 개발 업무 등을 총괄하게 된다. 그룹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출근하던 조 전무는 경영 복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가족간 합의를 했느냐"라고 질문하자 "네"라고 짧게 답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시장에서는 조 전무의 경영 복귀가 ‘무리수’라는 인식이 강한 상황이다. 회의 중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폭언을 하고 물컵을 던진 사건의 충격이 아직 남은 탓이다. 조양호 전 회장 별세 두달여만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점도 입방아에 오른다. 조양호 전 회장은 "유사사태의 재발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겠다"며 지난해 4월 조현아·조현민 자매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바 있다. 조 전무의 경영 복귀는 오빠인 조원태 회장의 승인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와의 경영권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한진칼 정관상 논쟁의 소지가 있는 만큼 강 대표가 조 전무의 선임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진칼 정관 제 34조, 제35조 주요 내용.(사진=한진칼 보고서)


한진칼은 정관 제34조를 통해 ‘본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대표이사인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및 상무 각 약간 명을 선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만으로는 이사회 결의 사항에 대표이사 회장과 대표이사 부사장, 대표이사 전무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 부사장, 전무 등 직급상 전무를 의미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해당 문구에서 명시하는 ‘전무’는 대표이사 전무가 아닌 직급상 전무를 포괄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즉 대표이사 회장뿐만 아니라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을 선임할 때도 ‘이사희 결의’를 거치도록 규정했다는 것이다. 정관 내 전무가 ‘직급상 전무’가 아닌 대표이사 회장, 대표이사 전무를 의미할 때는 쉼표가 아닌 가운뎃점(·)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같은 회사 정관 제35조에서도 이 같은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가 확인된다. 한진칼 정관 제35조 제2항에는 ‘부사장, 전무 및 상무는 대표이사인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을 보좌하고 본 회사의 업무를 분장 집행하며 대표이사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유고 시에는 이사회에서 정하는 순서에 따라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적혀 있다. 해당 항목에는 직급상 전무·상무와 ‘대표이사인 회장, 부회장, 사장’ 등을 명확하게 구분지었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표이사는 기관명이고 회장, 부사장, 전무 등은 직위 즉 회사에서의 서열을 의미한다"며 "조현민 전무가 대표이사 전무가 아니라서 이사회 결의 없이 선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한 기관투자자는 "비슷한 정관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도 연말 대표이사가 아닌 전무, 상무 등 임원을 선임할 때 이사회 의결을 거친 후에 공식적으로 임원 선임을 발표한다"며 "한진칼처럼 많은 기업들이 해당 문구를 이상하게 악용해서 임원을 뽑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절차상 적법하지 않다"고 짚었다.

한진칼 경영권을 노리는 KCGI 입장에서는 조 전무의 선임 절차를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KCGI는 이달 초 조원태 회장이 한진칼 회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회장 선임 안건이 이사회에 적법하게 상정돼 결의됐는지 조사하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기도 했다.

한진그룹 측은 조 전무 선임 과정에서 절차·법적 하자가 없다고 밝혔다. 또 비등기 임원은 이사회·주주총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조 전무는 지난해 물컵 갑질 사건에 대한 특수폭행·업무방해 등 혐의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국내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대표이사는 이사 중에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직급이 회장인지, 부회장인지, 전무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제34조는 대표이사 회장, 대표이사 부회장, 대표이사 전무로 해석하는게 타당하다"고 진단했다.


◇ 명분 쥔 KCGI vs 내실 다진 조원태 회장 일가

▲3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항공 미디어브리핑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


다만 결론적으로 KCGI가 조 회장 일가를 대상으로 싸움을 걸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됐다는 점은 확실하다는 평가다. 조 전무의 경영 복귀로 비판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만큼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대거 확보할 길도 열렸다. KCGI는 지난달 말 기준 한진칼 지분을 15.98%까지 확보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조 전무의 경영 복귀가 조 회장 삼남매의 상속·경영권 문제 해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남매가 조양호 전 회장의 지분을 문제없이 상속받을 경우 KCGI와의 대결에서 오히려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진칼 지분은 조양호 전 회장이 17.84%를 보유하고 있고 조원태 회장(2.34%)과 조현아 전 부사장(2.31%), 조현민 전무(2.30%)가 각각 3% 미만의 지분을 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조원태 회장은 당장 부친의 한진칼 지분을 정상적으로 상속받아야 한다는 고민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두 자매와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협조가 필수"라며 "두 자매의 경영 참여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향후 조현아 전 부사장이 호텔 분야 경영을 책임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자매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만큼 이 같은 조원태 회장의 결단이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미지수다"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당초 그룹 안팎에서 유력한 경영권 승계 방안으로 꼽혔던 ▲조원태 회장이 대한항공과 그룹 총괄 ▲조현아 전 부사장이 칼호텔네트워크 ▲조현민 전무가 진에어 등을 나눠 이끌게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편 조양호 전 회장이 남긴 주식의 상속세는 약 2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진칼, 대한항공, 한진 등 주요 계열사의 상속일 전후 각 2개월의 주식 평균 종가를 분석한 결과다. 30억원 이상 재산의 상속세는 세율 50%와 경영권 프리미엄 20% 할증에 따라 60%로 계산된다.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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