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너지] 국제유가, '사우디發 리스크' 소멸...수요둔화로 초점 재전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9.30 08:09

사우디 원유시설 예상보다 빠른 정상화에 공급부족 우려 해소

폭등세서 하락세 전환…글로벌 경기침체에 원유수요 전망치↓

▲(사진=연합)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원유시설에 대한 예멘 반군의 드론(무인기) 공격으로 인해 폭등한 국제유가가 힘이 다시 빠지고 있다. 지난 14일 공격으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설비가 가동을 멈추면서 원유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원유시설의 정상화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시장의 흐름은 예상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발(發) 공급부족 우려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이 사라졌다며 원유시장의 초점은 다시 수요둔화로 돌아설 것으로 진단했다.


◇ 1100만 배럴 산유량 달성한 사우디,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 소멸


실제 국제유가는 사우디 원유시설이 공격받은 후 다음날부터 지난 주까지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0.88%(0.50달러) 하락한 55.9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11월물 브렌트유도 전일대비 배럴당 1.32%(0.83달러) 내린 61.91달러를 기록했다. 이로써 WTI와 브렌트유는 사우디 원유시설에 대한 폭격이 일어나기 전날인 13일 종가보다 각각 1.93%, 2.81% 올랐다.


사우디의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원유시설 2곳이 피습받은 당일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사우디 정부의 원유시설 복구 속도에 따라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예멘 반군의 공격으로 인해 가동이 잠정 중단됨에 따라 하루 57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사우디는 추산했다. 이에 따라 16일 기준 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4.7% 폭등하는 등 2008년 12월 이후 약 11년 만의 ‘퍼센트 기준, 하루 최대폭’의 상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오닉스 원자재의 최고경영자(CEO) 그레그 뉴먼은 "이번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JP모건의 크리스티안 말렉도 "시장이 지정학적 요인에 집중하면서 향후 3∼6개월간 국제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사우디가 원유시설 피격으로 줄어든 생산량을 상당 부분 회복해 2∼3주내 복구를 완료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폭등세를 보였던 국제유가도 5% 이상 하락하는 등 안정을 되찾았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신임 에너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의 원유생산량을 9월 말까지 1100만 배럴(bpd)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압둘아지즈 장관이 예고한 기간보다 더 빠르게 원유 정상화가 진행되면서 이미 원유 생산량은 1100만 배럴(bpd) 이상을 달성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블름버그는 현 상황과 연관된 관계자를 인용해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는 예상된 기간보다 한 주 더 빠르게 1100만 배럴의 원유생산량을 달성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도 소식통을 인용하면서 사우디가 1130만 배럴(bpd)의 생산량을 회복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트레디션 에너지의 젠 맥길리언 수석 애널리시트는 "사우디의 원유 생산은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섰다"며 "우리가 잃은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프리미엄이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꼽히는 사우디에서 공급부족을 야기하는 요인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 원유시장의 초점은 다시 ‘수요둔화’


일각에서는 원유시장 트레이더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 쪽으로 초점을 전환했기 때문에 유가하락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의 닉 커닝엄 연구원은 "사우디의 막대한 원유생산량을 담당하는 시설 두 곳에 대한 공급차질 우려가 갈수록 완화되면서 트레이더들은 글로벌 경기침체 쪽에 눈길을 다시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코메르츠방크도 최근 투자노트를 공개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은 더 이상 공급부족이란 리스크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며 "최근에는 수요 둔화에 대한 걱정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지난 5월부터 하락세를 이어왔던 국제유가가 최근 사우디에서 불거진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깜짝 반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발 공급차질 위험이 점차 사라지자 시장은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둔화라는 근본적인 요인에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실제 글로벌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유럽경제의 심장이라 불리는 제조강국 독일의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1.4로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과거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PMI는 기업의 구매관리자들의 활동을 측정한 지표로 지수가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50 미만이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9월 제조업 PMI도 지난달 51.1보다 하락한 50.3을 기록했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제조업 PMI는 45.6로 지난달 47.0보다 낮았다.

무역전쟁의 당사국인 중국도 넉달 연속 제조업 경기가 악화되고 있다. 중국의 8월 PMI는 49.5로 나타나는 등 위축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9월 제조업 PMI는 전월 50.3에서 51.0으로 상승하며 5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가 9월 들어 9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전월치인 134.2에서 125.1로 하락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133.0을 큰 폭으로 하회하는 수치다. 소비자신뢰지수는 소비자들의 재정과 경기에 대한 평가를 나타낸다.

컨퍼런스보드의 경제선행지수 부문 린 프란코 선임 이사는 "무역과 관세 관련 갈등이 지난 8월 말부터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 린치의 조 송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둔화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이제 둔화 폭에 있다"고 밝혔다.

주요 신흥국인 인도는 경기 침체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간 인도의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6년만에 최대 낙폭이기도 하다. 로이터는 "인도에서의 이러한 경기위축만으로도 글로벌 원유 수요의 10만 배럴(bpd) 이상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지난 27일(현지시간) "글로벌 경기가 계속 안 좋아질 경우 올해와 내년에 대한 원유수요 전망치를 다시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미국에서 원유 재고가 증가한 점도 국제유가를 끌어내린 또 다른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9월 셋째주 원유재고는 전주보다 약 240만 배럴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사우디 원유시설 2곳이 공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재고가 늘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5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 하락하는 유가 속 ‘무역협상’은 호재


한편, 유가하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 협상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점은 글로벌 원유시장에 호재다.

최근 미국 CNBC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간 고위급 협상이 다음달 10일로 확정됐다. 양국은 다음달 초 미국 워싱턴DC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위급 협상에는 미국 측에서는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므누신 재무장관이, 중국 측에서는 류허 부총리 등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래리 커들로 위원장은 중국의 대두·돼지고기 수입을 거론하면서 "협상으로 들어가는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가오펑(高峰)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중국 기업이 시장 원칙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따라 미국산 농산물의 구매를 진행했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대두와 돼지고기를 구매했다"면서 양국간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인 미국산 농산물 구매 사실을 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양국이 무역 분쟁을 끝내기 위한 합의에 이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다만 ‘나쁜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시장 예상보다 일찍 중국과 무역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고 말해 양국 협상에 대한 기대가 다시 커졌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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