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
북미대화 부진에 불만 표시
"南과 합의" 언급 협상 여지
관광 재개 준비 현대 '당혹'
정부 "발언 의도 파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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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11년전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총력을 다해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큰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측 시설을 모두 들어내라"는 수위 높은 발언과 함께 금강산 내 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관계의 상징과 같은 곳인 동시에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새 먹거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최대 사업처다.
23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둘러본 뒤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이날 보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돼 흠이 남았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데다 남북간 경제협력에도 속도가 붙지 않자 김 위원장이 시끄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남한과 실질적인 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판단에 내부 결속을 위한 발언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문제는 금강산 관광길이 막힐 경우 민간기업인 현대그룹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이다. 그간 남북 관계를 둘러싸고 호재와 악재가 연이어 나오긴 했지만 김 위원장이 시설 철거를 ‘직접 지시’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전망이다.
금강산관광 주사업자인 현대아산은 이날 "금강산관광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도에 당황스럽다"며 "차분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현대아산이 현재까지 금강산관광지구 내 유형자산 구축을 위해 투입한 금액은 약 2300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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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
북한이 실제 시설을 철거하더라도 우리 정부 차원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기 힘든 상태다. 통일부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국민 재산권 보호를 위해 모든 노력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북측이 철거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앞서 지난 2010년 북한이 남측 자산을 몰수(정부 자산) 또는 동결(민간 자산)했을 때 역시 우리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만 밝혔었다.
현 회장은 이날 북한 매체들의 보도와 관련 그룹 내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로부터 보고를 받고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989년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물꼬를 튼 금강산 관광은 현 회장에게도 의미가 큰 사업이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뒤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 다음달인 11월 금강호가 출항하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까지 195만여명이 경험했을 정도로 순항했다.
현 회장은 2009년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을 다시 시작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당시 당국간 입장 차이 탓에 결렬됐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판문점 선언’을 하며 다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 회장은 당시 그룹 내 남북경협 TF팀을 꾸리고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으며 관광 재개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무조건 심각하게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은 수십년간 지속된 문제고, 금강산 관광도 이미 11년째 중단 상태인 만큼 현대그룹이 입게 되는 직접적인 피해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의 발언이 일방적인 철거를 지시한 것이 아니라는 진단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김 위원장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남북관계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파악에 집중하는 한편 후속 대응을 고심한다는 방침이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북측의 의도라든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파악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