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
지난 5일 정부는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데이터·AI와 미래차·모빌리티, 의료신기술과 헬스케어, 핀테크 등을 규제혁신분야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서는 모든 규제를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법령을 정비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사업화를 지원한다는 방침도 수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대가 되는 계획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혹시 4·15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空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과도한 불신일수도 있다. 그러나 출범 이후 줄곧 상생, 공정경제, 소득주도 성장 등을 정책기조로 반기업적인 행보를 보여온 문재인 정부인 점을 감안해 보면 과도한 불신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이러한 불신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번에 발표한 규제혁신 방안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정부가 선정한 신사업들은 일명 4차 산업 군에 속하는 사업들이다. 즉, 전통적인 사업들과는 프레임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현행 규제들을 대폭 개선하지 않으면 오히려 법적용상의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부는 규제혁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상생, 공정경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고수하는 한 규제혁신을 실천하기란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번을 계기로 문 정부는 그 동안 유지해온 경제정책의 기조를 전면적으로 수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데이터·AI사업에 대해서는 상생 또는 공정경제라는 정책기조를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분야는 승자독식의 시장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상생을 전제로 하는 공정경제 정책기조로는 규제를 혁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차·모빌리티 사업을 위해서는 일자리 정책 등과 관련해 상생 및 소득주도성장 등과 같은 정책기조를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용안정성 제고차원에서 노동시장을 경직화시키는 노동정책들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파견근로 제한, 주 52시간 근로제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의료신기술과 헬스케어 분야의 신사업과 관련해서도 상생은 물론이고 공정경제, 소득주도 성장 등 문재인 정부 정책의 전반에 걸친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 이 역시 승자독식의 시장이 형성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 분야 역시 금산분리로 대변되는 공정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방향의 수정이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의 본질은 산업간, 기술간 융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 지지 세력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번 규제혁신방안은 대한민국의 미래, 특히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정책이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보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방법으로 규제혁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성문법계를 택하고 있는 만큼 영미 법계처럼 네가티브규제 방식 내지는 제로베이스규제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활력제고법처럼 신사업특례법을 별도로 제정하여 이를 시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신사업특례법에 신사업의 개념정의를 명확히 하고 신사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심의기구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입법례를 찾기 어려워 신사업특례법을 제정하기란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우리만의 고유한 거미줄 규제를 갖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특례법 제정 역시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디 올해는 총선의 해로 기억되기 보다는 신사업특례법 제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4차산업혁명의 선두국가로 자리매김한 중요한 한해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