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강제성은 없는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2.17 21:50

양리원(녹색기술센터 연구원)


2015년 파리협정의 채택은 2020년 이후 전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신기후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하여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보다 훨씬 아래로, 1.5℃ 이내로 한다는 목표를 규정하고,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들로 하여금 국가결정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NDC)를 제시하도록 하였다.

NDC란 각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이 취할 노력과 목표를 스스로 정하여 담은 문서이다.

파리협정은 모든 당사국이 NDC를 수립해야 하고, NDC 상의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채택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38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하향식(top-down)감축 의무를 정하여 부과하던 교토의정서 체제와 다른 지점이다.

2005년에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감축 의무가 있는 선진국이 1차 공약 시기(2008∼2012) 동안의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시, 2차 공약 시기(2013∼2020)에 기존 감축 공약치의 1.3배로 감축량을 늘리는 벌칙을 부과함으로써 의무 이행을 담보하려고 하였다. 국제환경협정에서 의무 불이행에 따른 벌칙을 도입한 것은 당시로서는 도전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의무 이행과 강력한 준수체제에 대한 부담으로 미국, 캐나다, 일본, 러시아 등 선진국들이 교토의정서에 불참하거나 탈퇴하면서 협약의 실효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인도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개발도상국들이 감축 의무 부과 대상이 아닌 것 또한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를 타개하고 새로운 체제를 설립해야 한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다년간 협상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채택된 파리협정은 선진국, 개도국의 구분없이 모든 당사국이 NDC라는 상향식(bottom-up) 감축 목표를 자발적으로 설정하고 제출하도록 하였다.

높은 이행 강제성으로 인해 참여율이 저조했던 교토의정서를 교훈 삼아 파리협정은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고 엄격한 이행 준수 절차를 채택하기보다는 이행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함으로써 국가들의 참여를 높이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감축 목표 달성에 대한 직접적인 강제성이 없다고 해서 파리협정의 실효성이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국제환경법의 실효성이 약한 이유는 협약의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체제, 기준, 지침, 일정 등 세부사항을 규정하지 않거나, 이를 각국의 입법적. 행정적 조치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질서 하에서는 중앙 입법기관이나 집행기관이 없기 때문에 협약의 준수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거나 집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점도 있다.

파리협정은 이러한 한계에 대해 보고.검증과 관련한 절차적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각 국가들의 행동과 노력을 현미경 아래 놓고 상호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바로 투명성 체계(Transparency Framework)와 글로벌 이행점검(Global Stocktake) 등의 장치를 통해서이다.

투명성 체계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동과 지원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검증하는 절차를 말한다.

파리협정은 국가별로 감축 목표 달성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담은 격년투명성보고서(Biennial Transparency Report)를 2년에 한번씩 제출하여 감축 목표의 이행 실적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매 5년 마다 글로벌 이행점검을 통해 모든 국가들이 제출한 NDC가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한다.

이에 당사국들은 2018년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파리협정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이행지침(Paris Rulebook)을 채택하였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하여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상세한 추가 정보 목록을 정하였는데, 이런 상세 정보가 공개될 수록 더욱 엄격한 이행점검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파리협정은 감축 목표 달성에 대한 강제성을 부과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의무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행점검을 위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여 국가들이 스스로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실효성을 갖추고 있다. 투명성 체제가 결국 파리협정의 성공적 이행과 목표 달성에 있어 핵심이 될 것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2020년에는 모든 나라가 NDC를 갱신하거나 새로이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2015년 6월 제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갱신하여 제출해야 한다. 그간 목표 이행을 위해 2016년 제1차 기후변화대응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기본로드맵을 채택 및 수정한 바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감축 주체, 목표수립 방식, 이행 수단, 감축의지 등에 있어서 정부, 산업계,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별로 상당한 입장차이가 있어 왔다.

높아진 국가적 위상에 따라 진전된 감축 목표를 설정하면서, 동시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이행 가능한 목표를 수립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NDC의 이행 실적 및 전지구적 이행점검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한 준비를 수반하여 전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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