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투자자 부담으로 자문사의 보고서를 산다
한국에도 요즈음 여러 개의 주주 의결권 자문회사가 활동하고 있다. 외국계로는 International Shareholder Service (ISS), 글래스루이스가 있고, 국내 자문사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좋은지배구조연구소 등이 있다. 이들은 국내 2,200개 상장사의 E(환경), S(사회적 책임), G(지배구조)를 평가하고, 각 기업의 의안을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어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보고서 건당 1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사 전체에 대한 보고서는 1~2억 원에 판매한다고 한다. 기관투자자들로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준수하려면 어떤 기준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대규모 기관투자자가 아닌 이상 자체적으로 인원을 두어 각 기업의 ESG와 주총 의안을 분석하려고 인적ㆍ물적 시설을 갖추려면 비용이 상당히 든다. 이보다는 자문사의 보고서를 구매하는 것이 간편하고 비용도 덜 들어 효과적이다. 분석이 잘 못되었어도 자문사의 과실로 돌리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 기관투자자들이 지출하는 이 보고서 구매비용은 결국 고객인 투자자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돈벌이 나선 자문사들
돈을 버는 쪽은 자문사들이다. 그래서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벌써 6개나 설립됐다. 이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당시 뻔질나게 세미나를 열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또한 건전한 자본시장의 발전이 기대된다고 소액주주들을 홀렸다. 그야말로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것이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의 국정과제였고, 문재인 정부에 와서 완성되었으나, 기업들로서는 죄인처럼 눈치만 살폈다. 반대하면 정부 시책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좁은 시장에 6개나 난립하여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보고서가 기업을 곤경에 빠뜨린다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가 2018년 봄 현대모비스 분할ㆍ합병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이유는 다양했지만,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미래 전략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특히 모비스에서 분리되는 분할법인과 현대글로비스 간 합병 비율이 모비스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책정됐다고 주장했다. 분할법인이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되고 글로비스는 고평가됐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평가는 톰슨로이터라는 투자정보업체가 모비스의 영업실적이 좋은 과거의 재무정보를 바탕으로 한 분석을 기초로 했다. 그런데 현대차 그룹은 최신 자료인 2018년 4월 말 발표된 1분기 모비스 영업 실적을 근거로 재무분석을 하고 합병비율을 계산했는데, 당시 1분기 모비스 영업 실적은 전년 동기에 비해 32.7%나 급락한 ‘어닝 쇼크’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러니 시차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ISS에게 고의는 있다고 볼 수 없으나 정확한 것은 최신자료를 반영한 현대차그룹의 재무정보였다. 또한 한국지배구조원은 현대차그룹의 분할합병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반대했다. 한국지배구조원의 의결권전문위원회 어느 인사가 자동차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시너지 효과가 있고 없고를 평가한다는 말인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현대차는 의결권자문사들의 부정적 분위기를 감안해 합병결의를 하기로 예정됐던 주주총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현대차그룹에게 돌아갔다. 현대차그룹은 아직도 이 일을 재추진하고 있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부실 보고서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가 지난 2월 26일 "지난 5년간 대한항공은 국토교통부의 항공안전 관련 행정처분 10건에 대해 과징금 76억원을 부과받았는데, 조원태 사내이사 후보는 당시 대표이사로 재직했으므로 기업 가치 훼손 이력 존재로 적격성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며, "조 후보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서스틴베스트는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연임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서스틴베스트가 집계한 ‘5년간 76억원 과징금’은 대한항공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부과받은 액수로 추정된다. 이 기간 중 대한항공의 항공안전 행정처분 과징금은 총 76억 1000만원(11건)이지만, 이 중 가장 큰 금액은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이 한건에서 27억 90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안전이 문제라고 하지만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 최상위급의 안전도를 갖추고 있다. 운항 1만편당 과징금은 한국 항공사들 중 최하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각 항공사별 운항편수 및 과징금 현황을 보면 절대액수에서 가장 과징금이 많은 항공사는 모 저가항공사로, 119억 2천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근로기준법 위반은 이 정부 들어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수 만 명의 근로감독관이 임명되고, 수많은 근로자가 언제든 회사 대표를 고발할 수 있는 구조라서 한국의 거의 모든 기업인이 여차하면 걸리는 범죄라 할 만큼, 경범죄보다 흔한 범죄가 되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엉터리ㆍ부실ㆍ편향된 보고서로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어도 의결권 자문사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금융위도 이런 엉터리 자문사 및 그들이 낸 보고서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린애가 장난으로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면, 어린애에게는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죽는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력하게 시행하고 싶은 정부의 비호를 받는 의결권 자문사들이 어린애처럼 순진하게 웃으면서 돌을 던지면 개구리 신세인 기업은 돌 맞아 죽을 수 있다.
엉터리 자문사를 중징계하고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은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다. 이것은 ‘건전한 목적을 가진 대화’로 번역된다. 기관투자자들이 주주권을 행사하기 전에 먼저 기업과 충분한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기관투자자가 이 대화를 하기 어렵다면 의결권 자문사가 대행해야 한다. 현실은 기관투자자든 의결권 자문사든 소수의 직원이 책상머리에 앉아 3월 주총 시즌 한 두달 동안 2200개 상장사의 안건을 분석한다. 그러니 벼락치기 보고서, 깜깜이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감독을 해야 할 관청인 금융위원회는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엉터리 보고서를 낸 자문사를 중징계하고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기업은 엉터리 자문사를 상대로 고의ㆍ과실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열심히 선전하고 추진하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도 올바로 정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