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4월호를 발행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4.08 10:37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4월 호’ 발행

[안동=에너지경제신문 정재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1일, "코로나의 봄, 우리에게 절실한 힐링타임" 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4월 호를 발행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해,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고, 최근에는 전 세계가 팬데믹 상황을 맞게 됐다.

코로나-19가 우리 생활에 등장한 이후, 국민들의 긴장감과 피로감은 나날이 쌓여만 가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코로나-19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환기시키고, 이웃에 대한 신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집단 효능감 등 몸과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와 "힐링" 을 화두로 "몸과 마음의 치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기획됐다.

△조선시대에도 자가격리가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도 자가격리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도 자가격리 있었을까?(제공-한국국학진흥원)

가난한 자들은 출막에서, 양반들은 집에서 전염병을 다스리다

호흡기 전염병의 유행 앞에서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민이 실천해야 할 강력한 의무로서 요청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었을까.

실록에서 보듯이, 활인서(活人署)에서 출막(出幕)이라는 임시 시설을 성 밖에 두고 감염병 환자를 별도로 이곳에 격리하여 환자들을 돌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설에는 감염병 환자만 머문 것은 아니었고 역병의 유행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과 같은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양반들은 집으로 감염병 환자를 들여 돌보았다.

병원이 많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여유가 있는 양반들은 감염병 환자들을 집에서 격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감염병에 걸린 남편을 돌보려는 며느리를 만류한 시아버지, 시아버지의 만류에도 남편을 간호하자 하루 만에 병의 차도가

16세기 안동의 양반이었던 금난수(琴蘭秀, 1530~1604)가 남긴 ‘성재일기(惺齋日記)’에는 감염병을 앓는 가족들을 치료하고 돌본 기록이 남아 있다. 1579년 3월 2일의 일이다.

세 달 넘게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끝에, 암자에 나가 있던 큰아들 금경도 병에 걸리게 된다. 금난수는 말을 보내 금경을 데리고 오게 하였고, 다른 아들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 감염을 조금이라도 막고자 했다.

금난수는 차도를 보이지 않는 남편을 직접 간호하겠다는 며느리를 만류했는데,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비록 혼인을 한 지 1년도 안 됐지만 그 마음과 정성이 너무나 지극했는지 간호를 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나자 금경의 병세가 덜해지게 된다. 금난수는 며느리를 곧바로 자신의 서얼 아우인 금무생의 집에 나가서 거처하도록 했다. 비록 병자의 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며느리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기록에서 시아버지 금난수는 집을 자가격리의 공간이자 치료의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병에 감염된 사람들은 집으로 들이고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현대의학의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감염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병자와 정상인 사람들을 격리함으로써 병의 감염을 막고자 하는 노력으로 판단된다.

특히 감염을 염려해 며느리라고 해도 아픈 아들을 간호하지 못하게 만류하는 모습에서 금난수가 감염병을 대함에 있어 매우 이성적이고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거두어 준 대승사 감염의 공포 속에서도 피어난 연대와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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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거두어 준 대승사 (제공-한국국학진흥원)

권상일의 청대일기(淸臺日記)에는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거두어준 대승사라는 절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1755년 12월, 경상도 지역에 감염병이 기승을 부려 수 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문경에 있는 대승사(大乘寺)라는 절로 거지는 물론, 양반과 상놈까지 모조리 모여들었는데, 절에서는 이들을 각박하게 내칠 수 없어서, 대승사의 승려들이 죽을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현대의학의 혜택을 입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 실체를 알 수 없이 갑자기 몰아치듯 다가와 생명을 앗 아가는 역병 앞에서 백성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아픈 이를 돌보려는 인지상정은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늘 상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의 두려움 속에서도 연대와 돌봄을 통해 고통을 나누는 모습들은 수많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돌봄을 제공하는 이웃, 사회, 더 나아가 국가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공동체적 연대와 보살 핌은 역병과 공포를 넘어서는 힘

△의사, 한의사, 만화가 등 다양한 필진이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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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한의사, 만화가 등 다양한 필진이 들려주는 이야기(제공-한국국학진흥원)

의사, 한의사, 만화가, 시나리오 작가 등 다양한 필진이 참여한 웹진 담談 4월 호에서는 ‘역병과 공포를 넘어서는 힘은 공동체적 연대와 보살 핌에 있음’을 주제로 담아내고 있다.

만화가 정용연 화백은 <봄>에서 역병에 걸려 숨을 거둔 아내 김광계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고 있다. 지난겨울 역병으로 아내를 잃은 김광계는 봄이 왔지만 역병이 물러가지 않아 "봄이 와도 봄이 아니로구나." 를 되뇌며 슬픔에 빠진다.

봄이 왔는지 산에 다녀오라고 어린 종에게 명을 내리는데, 한참 만에 돌아온 어린 종의 품에는 두견화(진달래)가 한 아름이었다. 김광계는 두견화를 병에 꽂으며 비로소 봄이 왔음을 느끼고 있다.

어린 종이 봄을 가져오다(김광계, 매원일기 중에서)

한국한의학연구소의 김상현 박사는 <몸은 통(通)하게 하고, 마음은 안정되게>에서 조선시대에 역병 정책이 어떻게 실행되고 어떠한 행정적 조치들이 취해졌으며, 그리고 서적을 간행하고 반포하던 활동을 이야기한다.

왕명으로 간행되었던 벽온방(瘟方) 등 다수의 서적들 처방이 병을 앓더라도 소화가 잘되고 대소변이 잘 나가서 체내의 기운이 잘 통하게 했던 것이며, 또 하나 공포의 감정이 몸의 기운을 닫아버리게 한다는 점을 들어 ‘공포’를 다스려야 하는 감정으로 설명한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 최은경 교수는 <질병이 연대의 마음을 고취시키다>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질병의 유행은 인간의 취약성을 경험하는 현장이며 취약성의 경험은 연대할 수 있는 이웃의 존재를 소중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조선시대 다양한 기록들과 함께 이야기한다.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쉘 위 댄스’라는 글을 통해 병이 들면, 약은 커녕, 누워 쉬는 것조차 호사였을지도 모를 이들에겐 과연 ‘진정한 치유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힐링을 담은 두 편의 영화 <대립군>과 <사도>를 소개한다.

△감염병에서 비롯된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고 서로 마음을 합해 이겨내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조선시대 선인들의 치료와 치유에 얽힌 이야기들은 ‘스토리테마파크’에서 창작소재들로 찾아볼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7권을 기반으로 5480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돼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해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조선시대 몸과 마음의 치료 이야기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역병과 위기가 빈번했던 조선의 사회적 상황에서 선현들이 공동체의 연대와 보살 핌을 통해 극복하고 치유했던 경험이 지금의 우리 현실에 용기와 희망을 준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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