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목표를 상실해버린 속빈 그린 뉴딜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6.04 14:23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정부가 디지털을 핵심으로 내놓았던 한국형 뉴딜에 뒤늦게 ‘그린 뉴딜’을 추가했다. 국제 사회의 기후변화 노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태양열·풍력·수소와 스마트그리드에 투자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가 우리를 ‘기후악당’이라고 부르는 진짜 이유에 대한 고민도 찾아볼 수 없다. 정부가 허겁지겁 내놓은 그린 뉴딜은 환경부·산업부·국토교통부의 부처 이기주의의 역겨운 악취만 물씬 풍기는 속빈 강정이다. 에너지 전환으로 포장했던 ‘탈원전’의 새 옷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가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UN 환경프로그램(UNEP)은 우리가 파리에서 제시한 2030년의 감축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영국의 기후행동추적도 우리를 사우디아라비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 국가’로 선정했다. 대통령이 그런 지적에 동의하는지는 국제 사회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노력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환경부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실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에게 엄청난 부담만 안겨주고, 전기요금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현장의 어려움을 파악하지 못한 관료와 전문가들이 책상머리에서 만들어낸 공허한 정책으로는 국제 사회에 약속한 배출량 감축이 불가능하다.

지난 3년 동안 발전 부문에서 늘어난 온실가스 배출량이 무려 5,100만 톤이나 늘어났다. 환경부의 로드맵에 제시된 목표량을 7,300만 톤이나 초과해버린 것이다. 매년 36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결과다. 발전업계가 굳이 노력을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에는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돈으로 해결할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인 탈원전도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는 정책이었다.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 기후변화 대응의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납득할 수 있는 진실이다. 굳이 빌 게이츠의 주장을 빌려올 이유도 없을 정도로 확실한 팩트임에 틀림이 없다. 탄소 배출 제로인 원전을 포기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에도 노력하겠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자가당착일 뿐이다.

정부가 태양광·풍력·수소가 ‘친환경적 청정에너지’라는 광고 문구에 넋을 빼앗겨버린 것이 문제였다. 태양광과 풍력이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의 극심한 간헐성을 고려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태양광은 하루 2.6시간을 가동할 수 있고, 바람이 잦아드는 봄·가을에 풍력은 무용지물이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LNG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다. 탈원전으로 태양광·풍력이 늘어나면 LNG도 확대할 수밖에 없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태양광·풍력을 설치하기 위해 숲을 훼손해야 하는 것도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는 일이다.

수소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특히 메탄을 열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려면 많은 양의 LNG를 연소시켜야 한다. 수소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친환경이라는 인식은 수소의 생산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착각일 뿐이다.

탈원전을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였던 지난 3년 동안의 경험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원전 포기로 두산중공업은 공중분해 직전까지 내몰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석탄 장비의 생산 기술을 휴지통에 내던져버리게 됐다.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 소멸의 길이었다. 이제는 세계 최고의 원전 장비를 생산하던 직원들이 재교육을 통해 낯선 풍력과 가스터빈을 만들어야 한다.

창원의 지역경제도 무너지고 있다. 280여 개의 원전 부품 생산업체들이 폐업의 위기에 절망하고 있다. 성장 단계에 있던 태양광 패널 생산 업체들도 싸구려 패널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에 힘없이 무너졌다. 도대체 정부가 강조하는 그린 뉴딜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밀실에서 어설프게 만들어낸 탈원전 공약을 정리하는 것이 진정한 그린 뉴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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