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순의 눈] 넥슨 아레나가 남긴 것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6.09 11:28

정희순 산업부 기자 hsjung@ekn.kr


"게임업계에선 전설적인 공간이야. 우리나라 최초의 e스포츠 경기장이거든."

게임 분야를 이제 막 담당하게 됐을 무렵, 간담회 참석을 위해 ‘넥슨 아레나’로 향하는 내게 선배 기자가 꺼낸 말이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 한복판. 그것도 e스포츠 경기장이라니. 전에는 그런 곳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몰랐기에 설렘과 기대가 상당히 컸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첫인상은 꽤 실망스러웠다. ‘아레나’라는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는 분명 고대 로마의 대형 검투경기장인데, 실상은 자그마한 간판이 걸린 입구로 들어가 하염없이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 구조였다. 국내 게임산업과 e스포츠 문화를 전혀 몰랐던 입장에서 본 ‘넥슨 아레나’는 그랬다.

넥슨이 ‘넥슨 아레나’의 운영을 중단한다. 대신 넥슨의 주요 IP(지식재산권)를 주요 단체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오픈 리그를 활성화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제 넥슨의 IP를 활용한 e스포츠 리그를 개최하기 희망하는 대학교나 직장, 동호회, 지방 정부 등 각종 단체는 넥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쌓아온 e스포츠 리그 운영 노하우를 이제는 민관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취지다.

넥슨의 이번 결정은 자사의 고유 IP들을 더 이상 지하에 담아두지 않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넥슨의 히트 IP들이 서비스 15년을 훌쩍 넘기며 이제는 어느 정도 ‘대중성’을 갖추게 된 만큼, 일정한 공간 안에 담아둔 채 ‘그들만의 리그’로 끝내지 않겠다는 각오다.

‘넥슨 아레나’의 운영 중단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분위기다. ‘넥슨 아레나’에서 개최된 리그들을 관람하며 e스포츠를 즐겼던 추억의 공간이 사라진다고 여겨서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추억은 영원하고, 전설은 기록된다. 공간이 사라져도 그렇다. 몇 해 전부터 초등학교 운동회에는 ‘크레이지아케이드’ BGM(배경음악)도 등장했단다. 삼십대 학부모와 십대 자녀가 모두 아는 그 음원이다. 자녀의 학교 운동회에서 바통을 들고 운동장을 뛰는 대신, 아이와 함께 카트라이더 레이싱에 참가할 일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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