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기업의 사명은 무엇인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6.12 08:17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필자가 잘 모르는 어떤 분이 국내 유명 신문에 이런 칼럼을 실었다. "서울시가 송현동 땅을 매입한다는 소식에 대단히 반가웠다… 그런데도 꼭 땅장사를 해야겠다는 (대한항공의) 잡상인적 사고가 실망스럽다.… 한마디로 이 땅은 ‘땅콩’과 ‘갑질’로 얼룩진 한진일가에 맡겨둘 땅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공공재다. 좋은 데 쓰시라고 선뜻 내어놓는 것도 작금의 부끄러운 사태에 대한 속량도 될 것이다. A380 기종이 4억달러 정도라니 5천억원이면 에어버스 한대 값이다."

이 글을 보면 사기업이 생돈 주고 매입한 사재(私財)가 졸지에 공공재로 돌변했다. 황당무계 그 자체다. 대한항공 처지는 지금 말이 아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로 여행객이 격감해 외국인 기장들 전원을 4개월째 휴직 중이며 국내외 직원 2만여 명이 6개월간 순환휴직에 들어갔고 임원 월급도 30~50%까지 반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항공사 지원에 580억달러(71조44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고, 독일은 국적기 루프트한자에 대한 금융 지원을 무한대(unlimited)로 설정했다. 한국 정부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긴급경영자금 1조 2천억 원을 지원하도록 했다. 문제가 된 송현동 땅은 시가 5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위 어떤 통 크신 분의 말에 따르면 에어버스 두 대 정도는 넉넉히 살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 주면서 한 대 정도는 속죄의 뜻으로 서울시에 기부하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 땅에 도심공원을 건립할 계획인데, 이 분은 콘서트홀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갑질한 사람이 한때 임원으로 있었던 기업은 부동산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임원이 갑질했으면 그 기업 자체도 나쁘고 그 기업이 속죄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한국 대법원은 1999. 7. 9. 99도1040 판결에서 회사의 재산이 곧바로 그 주주의 소유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심지어는 1인회사의 경우에도 회사와 주주는 별개의 인격체로서 1인회사의 재산이 곧바로 그 1인 주주의 소유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2007. 6. 1. 2005도5772 판결에서도 심지어 1인회사에 있어서도 행위의 주체 외 그 본인은 분명히 별개의 인격이며 1인 회사의 주주가 회사 자금을 불법영득의 의사로 사용하였다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주주 또는 임원과 회사는 완전히 별개의 인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법학에서는 ‘법인 그 자체 이론’ 또는 ‘법인이익 독립이론’이라 한다. 주주 또는 임원과는 별개인 법인 그 자체가 독립적 이익을 갖고 있어서 그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것은 우리가 법인, 즉 회사나 기타 재단법인 및 사단법인 등 법이 인정한 인간을 대하는 기본자세이다. 그래서 대주주든 임원이든 법인 돈을 함부로 가져다쓰면 횡령죄에 걸리고, 법인 일을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면 배임죄에 걸린다. 대주주, 임원, 법인은 서로 남이라 남의 돈 함부로 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주와 임원은 늙고 병들어 죽어도 법인은 이론상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물론 100년 기업도 대단한 것이라 매우 드물지만, 세상에는 200년, 400년 기업도 존재한다. 일본 스미토모상사는 400년 기업이다.

칼럼을 쓰신 이 분은 대기업의 과거 임원이었던 혈기 왕성한 40대 젊고 어린 한 사람이 5년 전 저질렀던 치기어린 행동을 지금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전직 임원이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인 대한항공을 잡상인이라 비하하는가 하면, 거금 5천억 원 넘는 돈을 서울시에 기부하라고 윽박지를 수 있나. 임원 또는 주주와 기업의 정체성(identity)을 혼동(混同)하였거나 알면서도 과장되이 동일시 한 것이 아닌가. 보통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기 위해 행위주체를 오인한 척 하기도 하고, 결국은 ‘아니면 말고’라면서 꼬리를 내리는 유형의 사람도 흔히 있긴 하다. 그에게는 5천억 원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대한항공의 2017년 연간 순익이 6792억 정도였다. 수 만 명의 임직원이 세계 곳곳을 누벼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이다. 승무원들이 12~15시간 졸음을 참으며 밤낮을 거꾸로 돌아 고단한 하늘길을 나서서 벌어들인 돈이다. 속죄는 왜 서울시에 해야 하나. 서울시는 경복궁 옆 이 땅에 호텔 건설허가신청을 계속 불허해 왔다. 이제 와서 무슨 도심공원을 짓는다고 사유지를 공원으로 용도를 지정해 다른 사람은 입찰도 못하게 하면서 땅값을 떨어뜨렸다. 그것이 그렇게 ‘대단히’ 반가웠나. 그분의 집터와 땅을 공원용도로 지정하고 딴 데로 이사 가라고 하면 아마도 감격해 눈물을 흘리시겠다.

기업은 돈을 벌어 주주를 만족시키고 근로자를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다. 이것도 제대로 못하면 빨리 망해야 한다. 사회 공헌은 그 다음 단계의 일이다. 벌어먹고 살지도 못해 국민 세금에 손을 벌리면서 분수에 맞지 않는 기부나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일종의 사기(詐欺)다. 물론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처럼 기업의 잘못이 아닌 경우는 구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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