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에너지 전환시기의 에너지 안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8.10 10:01

성원모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2020년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멈춰서며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이후 상반기 내내 유가가 초저가로 유지되면서 석유사업의 수익성이 감소한 반면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을 중심으로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BP, 쉘, 토탈 등 유럽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순제로(Net-zero)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 판매가 증가하고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써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테슬라의 주가는 연초 대비 3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의 중심에도 태양광, 풍력, 수소 발전 등을 확대하는 ‘그린 뉴딜’이 중심에 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노력과 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확대되는 것은 시대를 앞서 나갈 수 있는 움직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 과정은 역사의 한 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변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에너지원의 생산, 수송, 변환, 저장, 그리고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과 인프라 시설의 혁신을 요구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이며 국제 정치, 세계 경제의 변화도 수반할 것이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에너지 전환도 세대에 걸친 긴 여정이다. 

2019년 인류는 하루 1억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다. 2000년에 사용량이 약 8000만 배럴 수준이었으니 20년 만에 세계 석유 소비량은 약 25%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석유 사용이 2040년까지 계속 증가하여 하루 평균 1억 60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IEA의 장기전망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망은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의 비중이 단 시간에 증가할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한다. IEA는 전체 에너지원에서 현재 약 10% 비중인 신재생 및 바이오 에너지의 비중이 2040년에도 17%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수치만을 놓고 본다면 아직은 세계는 새로운 에너지 시대의 초입에 있다. 글로벌 에너지 정보회사 우드맥킨지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전망하며 향후 석유 수요를 세 가지 시나리오로 구분했다. 이 중 에너지 전환을 가장 급격하게 시도하는 시나리오(Accelerated energy transition)에서도 2030년까지 석유 수요는 감소하지 않는다. 2030년 이후에서야 매년 2~3%씩 감소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재생 에너지 산업은 여전히 도입기에 머물고 있다. 물론 4차 산업의 디지털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로 인해 그 변화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올 수는 있다. 이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 진보가 뒷받침된다고 해도, 시장 논리로 단기간에 신재생 에너지 사업이 성장기를 거쳐 성숙기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여건에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목표할 것은 석유 사용의 증가세를 멈추는 것이지 석유의 사용을 급격하게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럼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문제는 단순히 답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다루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팩트풀니스’의 저자는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고 그러면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안다는 느낌을 즐긴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생각이 실제 세상을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도한다는 것이다. 석유와 기후 온난화에 대한 시각도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기후 온난화의 해결책이 석유 시대의 종식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석탄 발전의 비중이 높은 중국이고 그 다음은 미국이다. IEA에 따르면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에도 증가세를 유지한 반면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같은 기간 전년대비 약 3% 감소했다. 미국의 산유량이 2018년에 비해 10% 이상 증가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든 것인데, 이는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이 증가하며 석탄의 소비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가스는 석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적다. 반면 중국의 석탄 소비량은 2017년 이후 3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그것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석탄의 사용이 우선 감소하여야 하고, 아울러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면서도 동일한 생산성을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 효율의 진보도 필요하다. 

또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사업의 확대도 에너지 전환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는 한시적으로 유용한 기후변화의 대응책이 될 수 있다. BP, 쉘, 토탈 등 메이저 석유회사가 야심차게 추구하는 순탄소배출 제로(Net-zero) 목표는 그들이 배출하는 탄소의 절대량을 ‘0’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다. 배출하는 탄소만큼 탄소를 흡수하는 사업을 확대해 말 그대로 ‘순 배출’을 제로로 하겠다는 것이다. 즉 석유개발과 생산을 주요사업으로 이어가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상쇄해가며 에너지 전환 시대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연료였던 석탄이 20세기의 석유로 대체되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후 석유는 지난 100여년간 문명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에너지 전환 시기에 석유의 사용은 점진적으로 줄여가야 하겠지만 적어도 한 세대의 기간 동안은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과거의 역할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에 주기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고유가와 저유가의 파고를 몇 차례 더 맞게 될 것이다. 그 변동성은 석유 수입국의 경제와 산업에 거대한 불확실성과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는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이며, 관련 산업은 GDP와 고용 등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에너지 전환과 함께 석유 수입국이 힘써야 할 것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석유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와 개발 역량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꿈을 품어야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이 땅에 석유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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