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9월 12일, 서울로 남쪽 윤슬 광장. 크고 작은 수천 켤레의 신발이 광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가운데 ‘기후위기를 넘는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날은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날’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일 수가 없어서 시민들이 기증한 신발이 대신 행진했다. 집회 생중계에 시민들은 전국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후비상상황 선포, 온실가스 배출제로 계획수립, 기후정의 실현, 범국가 기구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기후위기 대응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그린 뉴딜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그린 뉴딜에 2025년까지 총 73조4000억 원을 투입해 65만 9000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기후위기에 둔감했던 정부가 그나마 그린 뉴딜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그린 뉴딜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정부가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기존 정책을 그대로 둔 채 그린 뉴딜을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보자. 그린 리모델링,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전기·수소차 보급 확대를 골자로 한다.
환경부는 그린 뉴딜로 1229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 2017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1100만 톤이다.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EU와 미국의 그린 뉴딜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석탄발전소 7기를 추가로 건설하고, 해외석탄발전에 대한 투자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의로운 전환도 석탄발전 밀집 지역에 신재생에너지 지원을 확대한다는 것밖에 없다. EU는 그린 딜 투자 금액의 10%를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운영한다. 지금의 그린 뉴딜로는 기후위기를 못 막는다.
현재 경기부양대책 수준인 그린 뉴딜을, 탈탄소사회 전환 전략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린 뉴딜이 보조금 투입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핵심 제도 도입이 급선무다.
전력부문 믹스 조정과 탈석탄, 전기요금와 전력시장 제도개선, 내연기관생산판매금지연도 등 제도 개선이 같이 가야 한다. 이 모든 영역에 사회적 합의, 그야말로 뉴딜(New Deal)이 필요하다.
EU도 지난해 기후비상선언을 발표한 후 그린 딜 세부 정책을 수립에 2년여 동안의 의견 수렴, 토론, 보완 과정을 거친다. 생물 다양성, 먹을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 청정에너지, 순환경제, 건물, 교통, 오염물질 제거, 기후행동 등 분야별 정책안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과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도 모두의 참여를 통해 탈탄소 로드맵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문제는 소통의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에서는 하루를 멀다 하고 그린 뉴딜 토론회가 열리고,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분주해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은 어디에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소통창구를 알 수가 없다.
석탄발전 노동자,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청소년, 식량주권을 고민하는 농민, 코로나 충격에 허덕이는 중소기업 등 그린 뉴딜에 할 이야기 많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위기는 생존의 문제이고, 우리는 이토록 우리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린 뉴딜을 탈탄소 사회를 위한 우산정책으로 만들기 위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9월에 전력요금과 에너지세금 제도 개편 등 중장기전략을 마련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10월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 공론장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그린 뉴딜 기본법을 정의당은 그린 뉴딜 특별법을 만들고 있다. 이 모든 논의가 탈탄소사회을 만들 그린 뉴딜과 연결되어 있다.
정부는 탈탄소사회를 향한 수많은 정책대안과 제도개선을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 체계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탈탄소 정책의 제도화’와 ‘탈탄소 사회 실행 경로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라는 숙제를 마친 후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것이다.
논의의 장은 온라인상에 만들 수 있다. 다만 시민들이 개별 의견을 써서 올리는 게시판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초안 공개, 의견 수렴, 그에 대한 반응과 답변 등 논의를 체계적으로 하는 논의 방법을 설계해서 쌍방향 소통공간을 열어야 한다.
정부도 그린 뉴딜은 열린 정책으로 수정·보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어떻게 시민들과 수정 보완해 나갈지 소통공간을 마련하는 것, 지금 정부가 그린 뉴딜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