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칼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과 동서 이념 투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0.04 11:13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9월 27일 아르메니아의 선제공격으로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르메니아인이 90% 이상 거주해 아르메니아가 실효 지배하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인 나르고노-크라바트(Nagorno-Karabakh) 지역의 주도권 확보 때문이다. 양국은 이 문제로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교전을 벌였다. 이렇게 상황이 꼬인 가장 큰 이유는 구 소련 때문이다. 두 나라는 모두 과거 소련의 공화국이었고 소련 지배 당시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가 가능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이들 국가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국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이웃이지만 서로 매우 다른 나라다.종교적으로 아르메니아는 동방정교를 추종하는 기독교 국가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로 터키,이란 등 주변 이슬람 강대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산유국으로 아르메니아보다 부유하지만 아르메니아는 군사,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열세다.

아제르바이잔과는 영토분쟁을 겪고 있지만 사실 아르메니아가 가장 큰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터키다.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국력이 약해지자 아르메니아는 독립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오스만제국은 아르메니아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인종청소를 했다. 1914년에서 23년까지 약 150만 명의 아르마니아인들이 살해당한다. 아르메니아에 사실상 터키의 ‘동생’인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은 국가 존폐가 달린 생존 투쟁과 같다. 이미 이번 전쟁에 터키가 무력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루머가 있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으로서 구 소련 접경지라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한국에는 ‘케말 파샤’로 알려진 터키의 국부 아타툭(Ataturk)의 철저한 세속화 정책으로 터키는 친 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나라였다. 또 유럽연합(EU) 가입을 희망하면서 개방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2014년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이 취임하면서 달라진다. 에르도안은 장기집권을 위해 터키를 보수 이슬람 국가로 변화시키고 있고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이 에르도안의 권위주의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이런 터키의 변화를 우려해 다양한 방법으로 민주 터키를 지지해 왔다. 이에 반발한 에르도안은 그동안 취해왔던 친 서방, 친 유럽 태도를 친 러시아, 친 중국으로 전환했다.

국내 정치 지형 변화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터키를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에르도안의 독재 권력 강화를 위해 과거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시도가 러시아와 중국과 협력 확대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이스라엘과 UAE 수교, 국제사회 석유 자원 의존도 감소 등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중동 정세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터키는 장기독재를 노리는 러시아 푸틴의 신 서진정책과 일대일로 추진으로 서방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함께 장차 새로운 3각 동맹을 결성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터키는 나토의 탈퇴도 고려 할 수 있다. 물론 터키는 더 유럽의 일원이 된다는 꿈은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우려는 미국과 중국의 분쟁으로 신냉전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터키를 비롯한 범 중동·북아프리카·구소련 및 동유럽 일부 지역 국가들이 하나의 거대한 반 서방 블록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이는 사실 자유민주주의 기반의 미국, 유럽 및 서방과 독재와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 중국, 터키와 이를 지지하는 비 민주주의 비 서방국가 간의 이념과 체제 투쟁의 서막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은 이런 큰 변화의 전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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