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주주 3억 논란과 코스피 3000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0.27 08:16

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증권부장


"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강화하는 방침은 정부가 지금 결정한 것이 아니라 2017년 하반기에 결정된 사안이다."(10월 7일 국정감사,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내년부터 대주주 여부를 판단하는 주식 보유액 기준을 현행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고수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야가 이례적으로 한 마음으로 뭉쳐 해당 안에 대해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음에도 이같은 방침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홍 부총리는 국감 내내 대주주 요건에 직계존비속과 배우자 등이 보유한 물량을 모두 합한 금액을 적용하겠다는 가족 합산 규정은 개인별로 바꾸는 안을 검토하겠다는 수정안만 제시할 뿐, 주식 보유액에 대해서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이에 따라 올해 연말 기준으로 대주주는 내년 4월 이후 해당 종목을 팔아 수익을 낼 경우 22~33%의 양도세(지방세 포함)를 내야 한다.

개인투자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홍남기 기재부 장관 해임을 강력히 요청합니다’라는 청원글은 이달 25일 기준 17만6324명의 동의를 얻었고, ‘대주주 양도소득세는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악법입니다’는 글은 21만6844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공식답변 요건인 20만명을 충족했다. 더 나아가 올해 들어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이끌었던 개인들은 이달 들어서만 1조20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올해 들어 처음으로 코스피에서 월 단위 순매도를 눈앞에 두고 있다. 통상 연말에는 양도세를 피하기 위한 매도세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대주주 기준이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되는데다 이미 개인들이 올해 들어 국내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인 만큼 매도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개인들이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이 국민들의 합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홍 부총리는 이번 양도세 강화를 두고 정책의 일관성 측면과 과세 형평성을 강조했는데, 이것만으로 개인들을 설득시키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정부의 방침이 개인들에게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2017년 하반기와 2020년 하반기의 시장 상황이 너무도 달라졌다는데 있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부동산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개인들이 큰손이 되어 증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한 점이 특징이다. 과거 국내 증시에서 매일매일 손실을 입고 외국인의 수급에 끌려가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개인들은 국내를 넘어 미국 등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며 ‘서학개미’로도 입지를 다지고 있다. 다시 말해 갈 곳 없는 개인들의 자금이 증시로 흘러들었고, 이는 국내 증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국내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받쳐주는 상황에서 코스피가 상승하는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전혀 나쁠 게 없다. 국내 증시가 박스권을 뚫고 코스피 3000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건 개인이나 기업이나 정부나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직 ‘정책의 일관성’과 ‘과세 형평성’을 이유로 시장의 중요한 버팀목인 개인들을 겨냥한 과도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미 외국인과 기관은 정부가 대주주 범위를 기존 25억원에서 15억원, 10억원으로 순차적으로 완화했을 때부터 주식양도소득세를 내고 있었다. 즉 정부의 이번 대주주 기준 강화로 유일하게 피해를 볼 주체는 개인투자자라는 것이다.

현 정부는 시장의 상황과 관계없이 연일 부동산 관련 대책들을 쏟아냈다. 시중에 갈 곳 없는 자금들은 당연히 주식시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마저 과거의 악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개인투자자들은 또 다시 다른 자산시장을 찾아서 떠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코스피 3000 시대는 그야말로 아주 먼 미래가 될 수 밖에 없다.

정책의 일관성만큼이나 정책의 유연성을 갖는 것도 정부가 새겨야할 덕목 중 하나다. 국민 정서와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오히려 국민에게 의무와 부담을 지우면서 그에 따른 설득 논리도 부족하다면 "증세 목적이 아니다"는 정부의 항변 역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정부가 3년 뒤에 상황을 미리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3년 전에 나온 정책들을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바꾸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정부의 정책 하나에 국내 주식시장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medias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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